응급실 찾아 수백㎞ '뺑뺑이'…'전공의 이탈' 곳곳 의료 대란(종합)

'협진 과부하' 말기암 환자 숨져…기약없는 수술날
내부서도 "실망감 커" 비판…남은 의료진 고군분투

전공의 집단 이탈로 이른바 '빅5'(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 대형 병원에 가려던 환자들이 중소형 병원으로 몰리고 있다. 응급 환자수도 30% 급증했다. 22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에서 한 환자가 구급차로 호송되고 있다. 2024.2.22/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전국=뉴스1) 윤왕근 권영지 김지혜 김태진 박소영 이성덕 최성국 한귀섭 기자 = 정부의 '의대 증원' 계획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진료를 거부하고 나선지 사흘이 지나면서 전국 곳곳에서 수술과 진료 등 필수 의료 공백이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도 이날 역시 전공의들의 집단사직이 이어지면서 환자들의 신음소리만 커지고 있다.

◇응급실 찾아 뺑뺑이…기약 없는 수술날

22일 강원도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전날 오전 11시 28분쯤 당뇨를 앓는 양양군 거주 60대 A 씨가 오른쪽 무릎 아래에서 심각한 괴사가 일어나 119에 도움을 요청했다.

출동한 구급대는 영동권 거점 병원인 강릉아산병원에 유선으로 A 씨의 처치가 가능한지 물었으나, 당시 이 병원 응급실은 전공의 이탈로 진료를 할 수 없었다.

강릉아산병원 관계자는 "당시 환자는 수술이 필요한 상태라고 파악됐으나, 현재 전공의 이탈 등으로 인해 수술실을 축소 운영해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며 "유선상으로 다른 병원으로 이송을 권유했다"고 설명했다. 강릉아산병원은 이날 오후 1시 현재까지 소속 전공의 32명 중 23명(약 71%)이 사직서를 낸 상태다.

이에 구급대는 강릉지역 다른 병원과 속초지역 병원에도 수소문했으나 모두 진료가 불가능하다는 답을 받았다고 한다.

영서권인 춘천지역 대학병원에서도 이 환자를 수용하기 어렵다는 답을 받은 구급대는 일단 A 씨를 국군강릉병원으로 옮겼지만, 군 병원에서도 '환자 상태상 치료가 어렵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결국 다시 한번 수소문한 끝에 원주에 있는 세브란스기독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게 됐다.

울산 유일 상급의료기관인 울산대학교병원에서도 의료 공백이 장기화됨에 따라 수술 등 필수업무 차질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 병원에 내원 중인 전 모 씨(62)는 지난 1월 갑상선 암 제거 수술을 수술 날짜를 잡고, 전날 병원에서 '수술이 지연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

전 모 씨는 "한 달 동안 수술 날짜만 기다렸는데, 당장 다음주 월요일인 수술 확정 여부를 전날인 일요일에 알려준다고 하더라"며 "환자 입장에선 수술이 지연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겁이 나고 초조하다"고 불안해 했다.

전공의 집단 이탈로 '협진 과부하'가 걸린 응급실에서 환자가 숨지는 일도 발생했다.

최근 전공의 사직 사태 이후 서울 연세대학교 의료원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말기암 환자 B씨가 '터미널 케어'(말기 환자를 관리하는 임종 케어)를 위한 협진을 요청하던 도중 숨졌다.

당시 응급실에서는 관련 과에 협진을 요청했으나 전공의 집단 이탈로 '협진 과부하'가 걸려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다른 과에 협진을 요청하던 도중 환자가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대하는 전공의 집단 진료거부 사태가 사흘째 이어진 22일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에서 환자들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2024.2.22/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남은 의료진 과부하…내부서도 "실망감 크다" 비판 목소리

전공의들의 공백은 교수와 펠로, 진료보조간호사 등이 메우고 있다.

광주·전남 거점 병원인 전남대병원과 조선대병원은 이날도 전공의 복귀 없이 전문의·전임의 중심의 비상체계를 이어가고 있다.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 의료진 내부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남대병원에서 만난 한 의료진은 "아직 긴급 수술을 못 받는 등의 위급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지만 언제라도 위급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며 "전공의들의 단체 사직과 출근 거부에 실망감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환자를 생각하면 그러면 안 된다. 남은 의료진들도 수술 안 하니 편안하다고 생각하다가 환자들을 생각하면 한숨이 나온다. 이기적인 파업을 멈추고 병원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산대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간호사는 "우리 과는 아직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았다"면서 "의사들이 파업한다고 환자들도 병원에 안 오는 게 아니지 않나. 환자 수는 똑같이 많은데 의료인력이 부족하니 다들 힘들어 한다"고 토로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대하는 전공의 집단 진료거부 사태가 사흘째 이어진 22일 서울 시내 한 종합병원 응급의료센터에서 의료진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2024.2.22/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돌아오라"…업무개시 명령에도 '묵묵부답'

이 같은 사태에 정부는 이탈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지만 이들 아직까지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고 있다.

부산지역에서는 전공의 590여명이 사직서를 냈고, 보건복지부는 전날 그중 470여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업무개시명령이 떨어졌지만, 병원으로 복귀하는 전공의는 아직까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부산대병원 관계자는 "아직까지 병원으로 복귀한 전공의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사직서를 철회한 사례도 없다"고 말했다.

다른 대학병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동아대병원, 해운대백병원, 부산백병원 등에서도 전공의들의 병원 복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대전에서도 이탈 전공의 122명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지만 아직 따르는 이들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충남대병원 관계자는 "전공의 사직으로 인한 의료공백에 대비해 교수·전문의의 업무 범위를 넓히고 교수가 전공의 업무까지 커버할 수 있도록 조치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전공의들의 진료 거부 사흘째인 이날 전국 주요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 927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고, 8024명이 근무지를 이탈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대하는 전공의 집단 진료거부 사태가 사흘째 이어진 22일 서울 시내 한 종합병원에 의협과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는 성명서가 붙여져 있다. 2024.2.22/뉴스1 ⓒ News1 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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