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적 긴장감 높아질까 걱정” 접경지 주민들 긴장 속‘차분’(종합)
- 이종재 기자, 신관호 기자, 한귀섭 기자, 이시명 기자
(강원‧인천=뉴스1) 이종재 신관호 한귀섭 이시명 기자 = 22일 남북 간 무력충돌을 방지하는 9‧19군사합의 일부조항의 효력이 정지되면서 접경지 주민들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이날 오전 인천 강화군 평화전망대에서 만난 김승남씨(67·서울 마포)는 “서울서 강화로 오는 길에 정부가 9·19 군사합의 일부에 대해 효력을 정지했다는 말을 들었다”며 “우리도 자칫 전쟁에 휘말리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강화 평화전망대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육안으로 볼 수 있어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평소와 다름없이 평화로웠지만 방문객 사이에서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김씨는 “‘러시아·우크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일어날 때 ‘우리의 일이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정말 걱정된다”며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9·19 군사분야 남북합의서는 2018년 9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에서 개최한 정상회담을 계기로 채택한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다.
이 합의서엔 남북한 간의 군사적 우발충돌 방지 차원에서 MDL(군사분계선)을 기준으로 남북한 접경지에 △비행금지구역 △포병사격 및 연대급 이상 야외기동훈련 금지구역 △완충구역을 설정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정부가 이날 오후 3시부터 효력을 정지하겠다고 한 내용은 ‘북한의 도발 징후에 대한 공중감시·정찰활동을 복원’하는 9·19 군사합의 3조1항이다. 우리 군은 이르면 이날부터 군사분계선인근 상공에 헬기·무인기를 띄워 대북 감시·정찰활동을 재개한다.
이 때문에 북한 땅을 코앞에 두고 있는 강화 주민들의 불안감이 높다. 특히 확성기 방송이 재개되는 것 아니냐는 염려가 많다.
양사면에서 만난 안명순씨(70)는 “북한이 확성기로 밤낮이고 ‘미군을 때려잡자’ 등의 방송을 틀어대 소름도 끼치고 잠을 설쳤다”라며 “한동안 조용해서 좋았는데 다시 들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내일이 두려워진다”고 밝혔다.
정부는 대북 확성기를 언제라도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이어서 안씨의 걱정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이날 정부가 ‘9·19 군사합의 효력의 일부를 정지’한다고 발표하자 박태원 서해5도평화수역운동본부 상임대표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박 상임대표는 “요즘 물가가 너무 올라 먹고 살기도 힘든데 이제는 전쟁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라고 말했다.
서해5도 어장 축소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천시와 서해5도 어민들은 현재 서해5도 대청·소청도 동쪽에 있는 D어장을 북쪽으로 끌어올리고 확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9·19 군사합의 이후 신설된 D어장은 거리가 멀어 조업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D어장 위치를 조정하고 확장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번 정부의 ‘효력정지’ 조치로 이같은 노력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다.
대청도 한 어민은 “군사적 긴장감이 높아지면 어장을 확장하는 일은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며 “갈수록 서해5도에서 살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 관련 사태에 이골이 난 강원 접경지 주민들은 평소와 같이 차분한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사태가 확산될 경우 생업에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최춘석 철원 철원읍 대마1리 이장은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 뉴스를 보고, 남북 관계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면서도 "아직 무력충돌은 없어 주민들 반응은 크지 않은 상황이다"고 지역 분위기를 전했다.
남무호 철원 근남면 마현1리 이장은 "주민들은 평생 이 곳에서만 살고 있어서 그런지 아직은 큰 동요는 없다"며 "지금보다 더 남북관계가 경색되면 주민들의 불안감이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지역상인들은 이번 사태가 경기침체로 이어질까 불안해하고 있다.
주영래 속초시번영회장은 “코로나19 이후 관광경기가 조금 활성화하나 싶었는데, 부풀어 오른 기대감만큼 경기흐름이 피부에 닿지는 않았다”면서 “더구나 접경지역 상인들은 남북관계에 지장이 생길 우려가 있다고 하면 관광경제가 또 흔들릴까 두려워한다. 정부에서 이런 상황도 관심을 갖고 대처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명철 고성군번영회장도 “갑자기 발생한 상황이라, 현재 지역 분위기는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걱정이 생기고 있는 건 사실”이라며 “흐지부지된 남북관계 흐름 속에서 불안감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초래되면, 접경지 여건상 관광에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이런 걱정이 해소될 수 있도록 조치를 취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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