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의 보라카이' 기획자 "지역 등진 로컬 비즈니스는 필패"[#서핑성지 양양]

2015년 '서피비치' 처음 조성한 박준규 대표
"겨울 레저 흥망성쇠 지켜봐…서핑, 사계절 즐길 수 여행수단"

편집자주 ...인구 소멸의 시대. 인구 2만 동해안의 소도시 양양은 '서핑' 하나로 연간 1600만명이 찾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최고 핫플레이스가 됐다. 속초와 강릉 사이에서 볼품 없었던 시골해변은 어떻게 MZ세대의 성지로 변했나. '서핑 성지' 양양의 시작과 현재, 그리고 미래를 들여다보자.

강원 양양군 현북면 중광정리에 위치한 국내 최초 서핑전용해변 '서피비치'(서피비치 제공) 2023.9.27/뉴스1

(양양=뉴스1) 윤왕근 기자 = 양양이 '서핑 성지'로 주목받게 된 것은 2015년 로컬크리에이터 한명이 철조망을 낀 300여m 허허벌판 해변에 달랑 컨테이너 2동을 가져다 놓고 '서핑해변'을 자처하면서 시작됐다.

양양군 현북면 중광정리에 국내 최초 서핑 전용해변 '서피비치'를 조성한 박준규(45·사진) 라온서피비치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서핑 성지' 양양의 초석을 다졌다고 평가 받는 그를 만나 서핑성지 양양의 처음을 들어봤다.

지난 23일 양양 현북면 중광정리 서비비치에서 만난 박준규 대표.

◇"겨울스포츠 흥망성쇠, 두 눈으로 지켜봤다"

'서핑 성지' 양양의 초석을 닦았다고 평가받는 박 대표는 아이러니하게도 '겨울 왕국'에서 태어났다.

평창군 진부면이 고향인 박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스키와 스노보드 등 겨울 스포츠를 자연스레 접했다. 대학시절 강원지역 주요 리조트에서 일한 국내 스노보드 강사 1세대이기도 하다.

실제 국내 2호 스키장으로 화려하게 문을 열었다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던 고성 알프스리조트에서 일하면서 박 대표는 겨울 레저산업의 흥망성쇠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봤다고 했다.

그는 "설원이라는 무한한 자원을 단순히 '레저'에만 국한한다는 느낌이 컸다"며 "설원이라는 아이템, 리조트라는 플랫폼으로 무궁무진한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너무 레저 그 자체로만 활용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양양 서피비치에서 강습 받고 있는 초보 서퍼들.(서피비치 제공) 2023.9.27/뉴스1

◇해운대에서 만난 바다 "그곳엔 청춘이 있었다"

스키장을 떠난 박 대표는 취업과 창업을 반복하다가 2011년 여행 아이템으로서의 '바다'를 처음 접했다.

당시 신용카드사 자회사의 직원이었던 박 대표는 해운대에서 추진된 '스마트 비치' 사업에 참여하게 됐다. 당시만 해도 해변 파라솔과 튜브 대여 등은 대부분 현금 결제로 진행됐는데, 이용객들의 불만이 컸다.

이것을 카드 결제화 하고 광고 프로모션을 가져오는 것이 박 대표의 업무였다.

박 대표는 "바다는 편의시설도 부족하고 불편한 것 투성인 것 같은데, 항상 청춘들이 가득하더라"며 "편의를 어느정도 해결해주고 다양한 컨셉으로 이들의 로망을 실현시켜줄 수 있다면, 바다는 너무나도 좋은 여행 아이템이 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그때부터 바다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회사를 그만 둔 박 대표는 필리핀의 보라카이, 인도네시아 발리 등 해외 유명 해변을 닥치는대로 여행했다.

양양 서피비치에서 열린 코로나 선셋 페스티벌 모습.(서피비치 제공) 2023.9.27/뉴스1

◇"서핑은 레저가 아냐" 여행을 즐기기 위한 수단

그렇게 바다를 만난 박 대표는 양양에 서피비치를 조성하기로 마음 먹고, 지자체를 설득할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왜 하필 '서핑'이었을까.

일단 서핑은 계절의 제약을 받지 않았다. '해수욕 문화'가 전부였던 우리나라에서 '바다'라는 관광자원은 한철 장사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박 대표는 "우리나라 대부분 해수욕장 개장 일수는 45일 안팎"이라며 "그에 비해 서핑은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아 최대 200일까지 사용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서피비치가 생기기 전 양양에 서핑 문화 자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근 기사문이나 죽도해변 등 양양은 이미 서퍼들에게선 좋은 서핑 스팟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

다만 당시는 '레저'로서의 서핑이었을 뿐, 현재 양양의 모습처럼 여행이나 문화로서 서핑이 소비된다고 볼 순 없었다.

박 대표는 "해외 유명해변을 방문해보니 주간 컨텐츠와 야간 컨텐츠가 구분돼 있더라"며 "서핑은 주간 컨텐츠로 활용하고 보라카이나 발리처럼 야간에는 비치파티를 하는 문화를 정착하려 했다"고 말했다.

서핑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닌, 사계절 내내 핫한 청춘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박 대표는 허허벌판 해변에 야자수를 심고 해먹을 걸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했다. 밤마다 힙한 음악을 틀어 축제를 열었고 멋스러운 브랜드 맥주가 함께했다.

개장 첫해 1만명 정도였던 서피비치 방문객은 2016년 '코로나 선셋 페스티벌'이 대박을 치면서 젊은 층이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어 지난해에는 190만명이 찾았다.

지난 23일 강원 양양군 현북면 중광정리 서피비치에서 나들이객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23.9.27/뉴스1 윤왕근 기자

◇"보라카이같은 해변" 양양은 서피비치 최적지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그는 왜 굳이 '양양'을 자신의 꿈을 이룰 무대로 삼았을까.

먼저 양양의 지형적 특성이 마음에 들었다고 했다.

박 대표는 "우리가 흔히 아는 해외의 아름다운 해변은 대체적으로 일(一)자형"이라며 "우리나라 해변 대부분은 옆에 항구를 두고 움푹 들어간 'U자형'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공유수면 사용허가를 위해선 본래 목적이 없는 해변이어야 했다"며 "매일 밤 파티를 열어야 했기 때문에 민가와 떨어져 있는 곳이어야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조건에 부합한 곳이 바로 현재 서피비치가 위치해 있는 중광정 해변이었다.

양양서피비치 해변 요가 모습.(서피비치 제공) 2023.9.27/뉴스1

◇"지역 등진 로컬 비즈니스는 필패"

박 대표가 서피비치를 개장한 2015년 당시만 해도 시큰둥하던 마을 사람들도 마을이 천지개벽하는 걸 눈으로 확인한 이후 그의 우군이 됐다.

그는 "식당 매출이 달라지고, 지역 전체가 변하는 것을 체감하시곤 경계를 푼 것은 물론, 이제는 누구보다 든든한 우군이 되셨다"며 "페스티벌이나 프로모션 진행을 위해 허락을 부탁할 때도 이제는 적극적으로 나서주신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서피비치에서 진행하는 해변 요가가 흥행의 한 축이 되면서, 인구 2만여명의 양양에 요가원만 10곳 가까이 생겨났다.

일부 동해안에서는 기존 지역 어촌계나 마을자치회와 서핑 레저업자들과의 갈등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분명 갈등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환경 때문일 수도, 단순 텃세일 수도 있다"며 "그러나 바다라는 공용의 자산을 통해 이득을 보려고 하면 당연히 해당 지역의 신장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모와 자식 관계도 갈등이 있다. 심지어 그들의 텃밭을 이용해 돈을 벌려고 온 사람을 그 분들이 좋게만 바라볼 수는 없다"며 "설득하고 또 설득해서 융화돼야 한다. 지역을 버린 로컬 비즈니스는 무조건 필패한다"고 조언했다.

wgjh654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