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도시 속초엔 왜 '실향민'이 많을까?
9~11일 속초 엑스포 잔디광장서 '2023 속초 실향민 문화축제'
전쟁 직후 실향민 다수 유입, 어업 등 종사 현재의 터전 일궈
- 윤왕근 기자
(속초=뉴스1) 윤왕근 기자 = "가려고 해도 갈 수 없어 한스럽고, 오려고 해도 올 수 없어 한스럽다."
강원 속초시 미시령로 길 옆에 자리잡은 실향민 망향비에 적힌 글귀다.
설악산을 병풍 삼고, 드넓은 동해바다를 마당 삼는 관광도시 속초는 전국 유일의 실향민 공동체 도시이기도 하다. 6·25전쟁으로 수복된 속초에는 1950년대 실향민들이 다수 유입됐다.
이른바 '아바이마을'로 불리는 현재 설악대교 밑 청호동 일대에는 한때 거주자의 70%가 월남 실향민으로 구성되기도 했다. 신원이 확실해야 했던 당시 시대상 때문에 같은 고향 사람끼리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공동체가 형성된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어업에 종사하며 현재 동해안 대표 관광수산 도시인 속초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지금도 속초 지역사회에는 부모님의 고향이 '이북'인 실향민 2세대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관련한 여러 학술조사에 따르면 속초지역에 많은 실향민이 정착하게된 계기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접경지인 속초에 군부대 납품, 장사 등 군 관련 업무가 활발했기 때문이다.
실향민 중 다수는 전쟁 직후 고향과 멀지 않은 속초에서 먹고 살기 위해 군 관련 업무에 종사하며 지역에 정착한 사례가 많았다고 알려지고 있다.
수산 자원이 풍부한 것도 한 이유다. 6·25전쟁 직후 전 국토가 초토화된 상황에서, 고향마저 두고 온 이들이 택할 수 있는 직업은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는 것이 유일했을 터다.
마지막 이유로는 '고향'이 가깝기 때문이다. 6·25전쟁 직후만 해도 실향민들은 70년이 넘도록 고향에 가지 못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속초와 고성지역은 현재도 함경남·북도, 황해도, 원산, 북청을 비롯, 현대 정주영 회장의 고향으로 잘 알려진 강원 통천 등 이북지역 도민·군민회가 명맥을 잇고 있다.
이처럼 속초는 분단 현실이 만든 독특한 고장으로, 속초시는 이같이 속초에서만 볼 수 있는 역사·문화적 배경을 기리고 관광콘텐츠화해 지난 2016년부터 '실향민 축제'를 개최해 오고 있다.
지방권력이 교체돼 오면서 그 이름은 종종 바뀌긴 했지만, 이북5도위원회가 참여하는 합동망향제나 위령제 등 골자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올해 역시 오는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속초 엑스포 잔디광장에서 '2023 속초 실향민 문화축제'라는 이름으로 실향민 축제가 열린다.
'한반도 평화통일의 꿈을 품은 도시, 속초'라는 주제로 열리는 올해 축제는 코로나 팬데믹 해제 이후 더욱 풍성하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올해 축제는 실향민과 관광객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아바이마을을 벗어나 속초 엑스포 잔디광장에 메인무대를 마련, 개·폐막식을 비롯한 주요 행사가 진행된다.
청호동 망향공원과 동명동 수복기념탑공원 등에서는 합동망향제와 작은 음악회가 진행된다.
축제에서는 메인행사인 뮤지컬 갈라콘서트 갯배, 이북 5도 무형문화재 축제, 통일콘서트, 이북사투리 경연대회, 실향민 음식 요리 시연 이외에도 각종 체험행사 등이 축제기간 동안 방문객들에 선보일 예정이다.
둘째 날인 10일에는 ‘남북예술인 합동공연’과 올해 처음 개최되는 ‘속초·이북사투리 경연대회’가 열린다. 대표적 실향민 문화 중 하나인 사투리를 통해 축제를 찾은 사람들에게 쉽고 친근하게 실향민 문화를 선보인다.
축제 마지막 날인 11일에는 스타 셰프 이원일과 함께하는 ‘속초·이북 실향민 음식 시연 및 체험’행사가 열린다. 실향민 음식 중 하나인 평양의 어복쟁반을 기반으로 한 냉어복초계장과 속초의 아바이순대에 이국적인 맛을 가미한 요리를 사전 접수된 참가자와 함께 만들어 볼 예정이다.
축제의 마지막인 폐막식에서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속초사자놀이와 속초시민 및 축제에 참여한 모두가 시 승격 60주년 기념 대동놀이를 함께하며 축제의 막을 내린다.
이병선 속초시장은 “한반도 평화통일의 꿈을 품은 도시 속초에서 개최되는 이번 2023 실향민 문화축제를 통해 지역과 세대를 불문하고 모두가 하나 되는 화합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wgjh6548@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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