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때 벗엇지만…1년 지난 동해안 산불 깊은상처 여전

벌채·사방사업에 속도 불구…벌건 속살 여전한 피해지
60년 터전 잃은 이재민 여전히 임시숙소…늘 산불 공포

지난해 3월 강릉·동해 산불로 소실된 강원 동해시 묵호동의 한 펜션. 1년이 지난 현재에도 불에 그을린 흔적과 뼈대만 남은 흔적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다. 2023.3.3/뉴스1 윤왕근 기자

(강릉·동해=뉴스1) 윤왕근 기자 = 지난해 3월 강원 동해안 일대를 잿더미로 만든 화마(火魔)가 휩쓸고 간지 1년이 지났다.

당시 산불 피해가 컸던 곳은 강릉과 동해·삼척지역으로, 1년이 지난 현재 복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푸르고 울창했던 산림의 제 모습은 30년이 지나서야 갖출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강릉·동해 일대를 불바다로 만든 방화범은 최근 징역 12년이 확정됐다.

이처럼 화마의 흔적과 아픔이 여전한 가운데 올해 동해안의 봄 역시 메마른 날씨와 강풍이 이어지면서 산불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1년 지났지만"…화마의 흔적 여전

3일 오전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 일대. 당시 산불로 잿더미로 변했던 마을의 산림은 검은 때는 얼추 벗은 모습이었지만, 벌채가 이뤄진 탓에 산 전체에 벌건 흙더미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당시 동해안 산불로 인해 옥계지역에서만 훼손된 산림은 1900㏊에 달한다. 이 불로 소실된 주택만 6채로, 이날 최초발화지로 알려진 주택은 모두 철거된 상태였다.

1년이 지났지만 주민들은 여전히 산불 트라우마와 공포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 실제 이날 역시 강릉을 비롯한 동해안 6개 시·군에 건조경보가 발효되고 강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주민들이 노심초사하고 있다.

마을주민 김 모씨는 "옥계는 산골짜기가 많아 바람이 다른 곳보다 세게 부는 데 오늘도 바람이 좀 강해지는 것 같다"며 "산불도 무섭지만 장마 등 많은 비가 올 때마다 벌채로 약해진 지반 탓에 산사태가 날까 두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 강릉·동해 산불로 소실된 강원 강릉시 옥계면 남양리의 한 야산. 1년이 지난 현재 검게 탄 흔적은 많이 없어졌지만 벌채작업으로 벌건 흙더미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2023.3.3/뉴스1 윤왕근 기자

강릉 옥계산불 회복을 위한 벌채작업은 개인면적을 포함해 약 40% 진행된 상태다.

강릉시 관계자는 "주택 인접지에 대한 1차 사방사업은 완료했고 산불피해지에 대한 2차 사방 사업을 올해 마무리할 계획"이라며 "벌채가 완료된 지역에 대해서는 유실수로 조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시 불은 '이웃' 동해시까지 넘어와 더 큰 피해를 안겼다.

이날 영화 '봄날은 간다'의 촬영지이자, 묵호등대와 논골담길, 명태·오징어 덕장으로 유명한 동해시 묵호진동 역시 화마의 흔적이 여전했다.

마을 뒷산 곳곳 화마가 다녀간 검은 흔적이 남아 있었고, 당시 불에 타버린 펜션도 어직 철거가 안된채로 앙상한 뼈대만 남아있었다. 당시 불에 소실된 주택은 철거되고 컨테이너 형태의 이주민들의 임시거주시설로 변했다.

최만호 할머니(81)도 이 같은 임시거주시설에 살고 있는 이재민 중 하나다. 최 할머니는 산불로 60년 터전을 한순간에 잃었다.

1년 만에 다시 만난 최 할머니에게 불편한 점이 없냐고 물으니 "나라에서 해준 임시 집이 깔끔하고 좋다"며 "도와주는 사람도 많고, 만족한다"고 했다.

그러나 최 할머니는 경제적인 사정으로 집을 타인 명의로 넘겨 산불 당시 '세입자'로 구분돼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이재민보다 보상금도 적게 받았다.

최 할머니는 "집도 다시 짓고 하려면 돈이 많이 들텐데 큰일"이라며 "무슨 수가 어떻게든 생기지 않겠나"며 말을 흐렸다.

산불로 검게 그을린 강원 동해시 묵호동 일대 야산 모습. 2022.3.6/뉴스1 ⓒ News1 민경석 기자

◇강릉·동해 산불 방화범 12년형 확정

이 같은 큰 피해를 안긴 산불은 마을 주민의 '방화'로 시작된 것으로 확인돼 지역사회와 전국에 큰 충격을 줬다.

최근 대법원 1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산림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60)의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12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A씨는 지난해 3월 5일 오전 1시 7분쯤 가스 토치를 이용해 강릉 옥계면 남양리 자택과 인근 산림 등에 불을 질러 대형 산불을 낸 혐의로 구속기소 됐다. 또 손도끼 등으로 인근 주택을 파손한 혐의도 받고 있다.

이 같은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1심 재판부는 "범행도구를 미리 준비한 후에 불이 잘 날 수 있는 날을 선택하는 등 계획적으로 범행했다"며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이 같은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1심 재판부는 "범행도구를 미리 준비한 후에 불이 잘 날 수 있는 날을 선택하는 등 계획적으로 범행했다"며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1심 판결에 불복한 A씨는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 역시 "산불로 인한 피해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기각했다.

A씨는 '홧김에' 이 같은 방화를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이 당시 A씨를 구속기소하면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A씨는 인근 주민과 주택·토지 문제로 시작된 피해의식이 고립된 생활환경에서 피해망상으로 연결, 적대감으로 표출돼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강릉 옥계산불 최초발화지로 알려진 주택이 철거되고 빈 터만 남아있다. 2023.3.3./뉴스1 윤왕근 기자

◇트라우마 여전한데…산불 위험 또

이처럼 동해안 산불의 흔적이 1년이 지나도 여전하지만, 올봄 역시 메마른 날씨가 이어지고 강풍이 예고되면서 산불 위험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3일 강원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4시 현재, 강릉·동해·삼척·속초·고성·양양 등 동해안 6개 시군에 건조경보가 발효 중이다.

같은 날 오전 9시 기준, 해당지역 실효습도는 양양이 23%로 가장 낮고 속초 26%, 삼척 27%, 강릉 28%, 동해 29% 등이다. 남부산지에 위치한 태백도 30%, 정선 35%, 진부령 37%다.

실효습도는 화재예방의 목적으로 수일 전부터의 상대습도에 경과시간에 따른 가중치를 줘 산출한 목재 등의 건조도를 나타내는 지수로, 낮을 수록 화재 위험이 높다.

문제는 건조경보가 유지되는 가운데 산지를 중심으로 순간풍속 초속 25m 이상의 강풍이 분다는 것이다. 동해안과 영서 내륙에도 초속 15m 이상의 매우 강한 바람이 부는 곳이 있어 산불 위험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지난해 3월 4일 강원도 산불 화재 지역에서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대원이 진화작업 하는 모습. (산림청 제공) 2022.3.5/뉴스1

지난달 동해안을 '설국'으로 만든 폭설이 산불위험을 줄여줄 것으로 예측됐으나, 최근 낮기온이 빠르게 오르면서 동해안을 뒤덮은 눈이 순식간에 녹았다.

이처럼 동해안 산불위험이 최고조에 이르자 산림청은 2일 오후 6시를 기해 강원·경북 동해안 지역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를 '주의' 단계로 격상했다.

강혜영 산림재난통제관은 “건조한 날씨가 이어짐에 따라 그 어느 때보다 산불 예방이 중요한 시기”라며 특히 “농·산촌지역에서 불법 소각행위를 금지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강원지방기상청 관계자는 "당분간 강원 동해안을 비롯해 산지, 남부내륙을 중심으로 대기가 매우 건조해 산불 등 화재예방에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며 "동해안을 중심으로 강풍이 부는 곳이 있어 산행과 캠핑 등 야외활동 시 화기 사용을 삼가고, 화목보일러, 담배꽁초 등 불씨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wgjh6548@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