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웠던 중학교 동창들의 여행…비극은 소리없이[사건의재구성]
여동창 폭행해 '식물인간' 만든 20대男, 항소심서도 징역 6년
피해자 부모 SNS호소 글에 공분…검찰도 공소장 변경했지만
- 강교현 기자
(전주=뉴스1) 강교현 기자 = '우리 딸아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도와주세요.'
올 4월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 게시판에 '우리 딸아이의 억울함을 풀어주세요. 도와주세요'란 제목으로 사연이 게재됐다. 작성자는 피해자 B 씨(20)의 어머니.
작성자는 "딸이 중학교 동창들과 부산 여행을 갔다가 싸웠다. 이 과정에서 가해 남성 A 씨(20)가 욕설과 함께 딸을 폭행했다"면서 "폭행으로 인해 딸은 외상성 뇌출혈 진단을 받고 전신마비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해자와 그 가족들은 사과 한마디 없이 변호사를 선임했고, 도주 및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1년 넘게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며 "딸의 목숨은 길어야 2~3년이라는데 검찰이 A 씨에게 5년을 구형하는 것을 듣고 너무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었다"고 토로했다.
중학교 동창생들끼리 간 여행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검찰 등에 따르면 당시 B 씨는 함께 여행을 간 동성 친구와 다툼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A 씨는 이들의 싸움에 끼어들어 B 씨의 머리를 2차례 밀치는 등 폭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A 씨에게 폭행당한 B 씨는 바닥에 쓰러지면서 탁자에 경추를 부딪혀 크게 다쳤다. B 씨는 외상성 내출혈 진단을 받고 전신마비 식물인간이 됐다.
이후 A 씨는 중상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으며, B 씨 어머니가 올린 사연이 알려지면서 해당 사건은 공분을 샀다. 그리고 검찰은 A 씨에 대한 구형을 5년에서 8년으로 상향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으로부터 폭행당한 피해자는 인공호흡기가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상태로 앞으로도 의학적 조치를 계속 받아야 한다"면서 "피해자의 부모가 큰 고통을 받고 있고 추후 상당한 의료비와 간병비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점을 감안할 때 일반적인 중상해 사건보다 무거운 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며 징역 6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실형이 선고되자 A 씨는 항소했다. 검찰 역시 항소했다.
항소심 속행 재판 과정에서도 B 씨의 어머니는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달라며 재판부에 울며 호소했다.
B 씨 어머니는 "어릴 적 아픈 적 없는 건강하고 씩씩했던 딸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그나마 삶을 유지하고 있다. 딸 치료를 위해 지난 사계절 병원을 옮겨 다니고 경제적 어려움으로 군산 집으로 데려와 보살피고 있다"며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고, 딸을 보살펴야 하므로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아이 아빠는 딸이 잘못되면 같이 가겠다고 하는데, 가해자에게 엄벌을 내려 딸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검찰은 A 씨에 대한 혐의를 '중상해'에서 '상습 특수중상해'로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예비적 공소사실로 중상해 혐의도 적용했다. 그리고 검찰은 A 씨에게 징역 17년을 구형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A 씨에게 1심과 같은 징역 6년을 선고했다.
지난 18일 열린 A 씨에 대한 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재판부는 '상습 특수중상해'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 반면 예비적 공소사실인 '중상해' 혐의에 대해서는 1심과 같이 유죄로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과거 피고인은 4차례에 걸쳐 폭행 범행을 저질러 소년 보호나 벌금형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 다만, 피고인에게 내재한 폭력과 상해 습벽 역시 이 사건과 연관 지을 수 없어 인정하기 어렵다"며 "위험한 물건인 테이블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했다고는 판단할 수 없어 상습 특수중상해 혐의는 무죄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중상해죄는 중상해 결과가 발생했을 경우 상해 고의가 없었더라도 중상해 죄책을 지게 된다. 당시 피고인과 피해자의 상태, 신체 능력 차이, 폭행 방법과 강도 등 제반되는 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유죄가 인정된다"면서 "피고인은 왜소한 피해자를 폭행할 때 심각한 상해를 입을 수 있다는 예견을 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가 자신의 인생을 펼칠 기회 없이 허망하게 의식불명 상태인 점, 최선을 치료하더라도 장기적 생존이 어려운 점, 피해자 부모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엄벌을 탄원하는 점 등을 감안해 형을 정했다"며 징역 6년을 선고했다.
kyohyun21@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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