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참사를 보고도…"보도·차도 구분 없는 전주시 '충경로'

서울 시청역 참사 현장과 유사…전주시 "12m 간격 플랜트 박스 설치 예정"

전주 충경로 보차도. ⓒ News1 유경석 기자

(전주=뉴스1) 신준수 기자 = "길을 지날 때마다 자동차랑 같이 걷는 기분이죠. 갑자기 차 한 대가 보도로 훅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아찔해요. 시청역 참사를 보고도 느낀 게 없을까요?"

전북자치도 전주시 충경로 거리를 걷는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도로환경 개선사업으로 인해 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사라진 탓이다. 보행자들을 보호할 구조물도 설치되지 않은 상태여서 자칫 대형 참사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4일 오전 10시께 찾은 전주시 완산구 충경로. 여느 도로와 달리 이곳은 인도와 차도의 높이가 같았다. 보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경계 구역에 노란색 선만 그려져 있을 뿐 보도로 진입하는 차량 등을 막을 어떠한 시설물도 없었다. 곳곳에 차량 통제용 플라스틱 꼬깔콘과 드럼통이 놓여있기도 했지만, 보행자 안전 구조물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 때문에 다소 위험한 상황도 곳곳에서 발생했다. 실제 차도를 달리던 자전거가 뒤에서 차가 오자 갑자기 인도에 진입, 시민들이 몸을 피하는 일이 발생하는가 하면, 한 시민은 보도와 차도 경계선을 밟고 지나가는 우회전 차량에 놀라 뒤로 물러서기도 했다. 한 발짝 더 앞에 있었다면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이와 비슷한 상황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앞서 전주시는 지난 2022년부터 184억을 투입해 '충경로 도로환경 개선사업'을 추진 중이다. 이 사업은 병무청 오거리부터 다가교 오거리까지 1.2㎞ 구간 도로를 시민들이 걷고 싶게끔 만들기 위해 추진됐다. '시민들의 접근성을 높인다'는 이유로 보도와 차도의 구분을 없애고 광장형 형태로 조성됐다.

전주 충경로 보차도. ⓒ News1 유경석 기자

문제는 보차도 간 높이가 동일해지면서 교통사고 발생 시 보행자의 안전 확보가 더 취약해졌다는 점이다.

특히 충경로 인근에 한옥마을과 객사길 등 번화가가 밀집돼 있어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임을 감안하면, 광장형의 도로 환경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형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 모 씨(40대‧주부)는 "바뀐 충경로가 어떤 장점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며 "길을 지나갈 때 자동차와 같이 걷는 기분이다. 연석(보도와 차도 사이 경계가 되는 돌)이 있었을 때보다 훨씬 더 위협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대학생 안 모 씨(20대)는 "걷고 싶은 거리보다는 걷기 위험한 거리가 더 잘 어울린다"면서 "서울 시청역 사고도 보도와 차도 사이에 높이 차이가 적었다고 들었다. 사고 위험이 높은 거리를 돈을 들여 조성한 격"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지난 7월 1일 서울 시청역 앞에서는 역주행 차량이 보도로 진입해 9명이 죽고 4명이 다쳤다. 당시 현장은 보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연석이 매우 낮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9월 12일 부산 해운대구청 인근 삼거리에서도 보도 위로 승용차가 돌진해 보행자 2명이 숨지기도 했다. 이 사고 역시 보차도 간 높이차가 거의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대학교 도시공학과 장태연 교수는 "충경로 일대의 경우 유동인구는 물론 교통량도 많은 구역이라 무턱대고 보차도 구분이 없는 도로를 조성한다면 사고에 대한 위험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시 차원에서 해당 일대에 주정차 금지 구역 지정 등 안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주시는 공사가 마무리되는 내달 중으로 보도 위에 플랜트 박스(대형 화분)를 설치해 보행자 안전시설을 조성하겠다는 설명이다.

전주시 관계자는 "12월 중에 2m 간격의 플랜트 박스를 설치할 계획이다"며 "플랜트 박스 자체만으로 무게가 250kg 정도 나가는데 거기에 흙을 채울 예정이라 차량 진입 억제용 시설물로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시민들에게 안전한 보행환경을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sonmyj0303@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