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박스 속 그림자 재현' 억울한 피의자로 몰린 남성, 무혐의 입증한 경찰

[제79주년 경찰의날] 양해민 전북청 순경, 과학수사 경연대회서 전국 1등
양 순경 "혼자 한 일 없어…앞으로도 경찰 본연의 업무 충실히 할 것"

전북경찰청 과학수사계 양해민 순경. ⓒ News1 유경석 기자

(전북=뉴스1) 장수인 기자 = "현장에 모든 답이 있잖아요. 보이지 않는 지문까지 찾아내 사건의 범인을 특정했을 때의 짜릿함을 잊을 수 없어요. 어떻게 하면 현장에서 채증한 증거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갈 수 있을지 계속해서 연구해 나가겠습니다."

지난 4일 경찰청 과학수사 우수사례 발표 경진대회에서 내로라하는 선배들을 제치고 당당히 전국 1등에 이름을 올린 양해민 전북경찰청 과학수사계 현장감식요원(순경·33)이 수상소감을 묻는 질문에 한 말이다.

양해민 순경은 이번 경진대회에서 그림자 영상 재현을 통해 피의자로 지목돼왔던 남성의 무혐의를 입증한 사실을 발표, 당당히 전국 1위에 올랐다. 지난 2020년 12월 그가 과학수사 특채로 경찰에 입직한 지 불과 3년 10개월 만에 거둔 성과였다.

지금도 혈흔 형태 분석을 위해 헌혈을 하듯이 피를 뽑는 일도 즐겁기만 하다는 양해민 순경을 지난 17일 만났다.

12일 전북 완주군 상관면 한 과수원에서 부산에서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는 20대 여성의 시신이 발견돼 출동한 과학수사 관계자들이 현장 감식을 하고 있다. 2020.5.12/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양 순경이 이번 대회에 나가게 된 것은 단순히 상을 타고 싶다는 욕심 때문은 아니었다. 과학수사로 지문이나 유전자 채취뿐 아니라 그림자 분석 등으로 실체적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열심히 준비한 덕에 전국 60여명의 과학 수사 경찰관 중에 최종 5인에 포함될 수 있었다. 여기까지도 큰 성과였지만 양 순경은 결국 전국 1등을 차지했다.

양 순경은 "전북경찰청의 과학수사가 얼마나 뛰어난 지 선배들을 대신해 직접 발표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긴장을 한 것도 잠시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발표는 끝난 상황이었다"면서 "지금도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서 진행됐던 대회를 생각하면 떨린다"고 환하게 웃었다.

양 순경이 발표한 사건은 지난해 초 전북에서 발생한 미제사건이다. 피해자는 사망했고, 피의자로 지목된 남성이 있었다. 하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현장에 남겨진 증거물은 피해자 주거지 주변에 주차된 차량 블랙박스 영상 속 그림자뿐이었다. 주변에 CCTV나 목격자도 없었다. 사설기관에서 블랙박스 영상에 대한 그림자 분석도 진행됐지만 제자리걸음이었다.

양 순경은 "검찰 보완수사가 내려졌고, 같은 시기에 이 사건을 맡은 경찰서에서도 의뢰가 들어왔다. 이에 사건 당일과 기상데이터와 천문‧항공데이터가 비슷한 날을 선정해 실제 블랙박스에 찍힌 그림자가 보이는지 재현했다"며 "현장에서 계측한 내용을 검찰로 보냈고 ‘피혐의자에게 죄가 없다’라는 결과가 나왔다.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릴 수 있는 상황을 과학수사로 막은 사건이다"고 설명했다.

전북경찰청 과학수사계 양해민 순경. ⓒ News1 유경석 기자

양 순경은 1등의 영광을 동료들에게 돌렸다. 형사과장을 비롯한 과학수사계 직원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전했다.

양 순경은 "그림자 분석으로 미제 사건을 해결한 것도, 모든 현장에서 어떤 답을 찾아갈 때도 절대 저 혼자 한 건 없었다"며 "김광수 과학수사계장님 등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쳐서 열정적으로 하다 보니 더 열심히 잘해야겠다는 생각만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과학수사는 계속해서 연구가 필요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연구를 하려면 장비나 시약을 구입해야 한다. 꽤 비싼데 팀장님이나 선배들께서 각자 구입한 걸 팀원들에게 '같이 쓰자'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해주시는 점에서도 대단하다. 과장님과 계장님, 팀장님 등 모든 분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앞으로의 목표도 밝혔다.

양해민 순경은 "중학교 시절 우연히 과외 선생님을 통해 과학 수사책을 보고 경찰이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졌고, 결국 법과학대학원을 진학하며 원하던 과학 수사 경찰관으로 활동을 하게 됐다. 지금 매일 매일 즐겁고 감사하다"며 "앞으로 과학 수사의 베테랑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또 경찰관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낼 수 있도록 항상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soooin9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