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마시고 툭하면 주먹질·협박…왕처럼 군림한 조합장의 종말

[사건의 재구성]피고인 "이기지 못할 술 마시고 직원들에게 몹쓸 짓, 죄송"
재판부 "원심 무겁거나 부당하지 않아"…징역 10개월 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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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뉴스1) 강교현 기자 = "피해 직원들에게 사죄드립니다, 또 선처를 구합니다."

지난 6월 직원들을 폭행하고 사직을 강요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A 씨(63·여)에 대한 항소심 결심공판이 열렸다.

"검찰 의견 제시해 주시죠"라는 재판부의 말에 검사는 미리 준비한 장문의 글을 읽어 나갔다. 검찰이 1심도 아닌 항소심에서 구형 이유를 직접 적어 온 것이다.

당시 검사는 "피고인은 자신의 지위로 피해자들에게 폭행뿐만 아니라 모멸감을 주는 행동을 반복했다"며 "사건이 수사기관에 이르자 합의를 종용하기 위해 지속적·반복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연락해 오히려 또 다른 피해를 일으키는 기이한 행동을 벌였다"고 말했다. 또 "평소에 자기가 마음에 드는, 혹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보이는 대목"이라며 재판부에 엄벌에 처해 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이 장문의 글을 읽는 동안 A 씨는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리고 최후변론을 통해 "피해를 입은 직원들에게 죄송하다"며 사죄를 구했다. 눈물까지 보였다.

검찰 등에 따르면 A 씨는 지난 2023년 3월 '제3회전국동시조합장선거'에서 전북 순정축협 조합장으로 당선됐다. 이와 동시에 직원들의 고통도 시작됐다.

A 씨는 평소 직원들에게 공개적으로 비난을 퍼부었다. 특히 술만 마시면 폭행하고 행패를 부리는 등 조합장의 권한을 이용해 왕처럼 군림했다.

실제 조합장이 된 지 한 달여 지난 4월 6일 오후 정읍의 한 노래방, 회식이 한창 진행되던 중 A 씨는 함께 있던 과장 B 씨에게 갑자기 욕설을 내뱉었다. 자기 집 주소를 몰랐다는 게 그 이유였다. A 씨의 행위는 욕설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곧바로 맥주병 2병을 탁자에 내리쳐 깨뜨렸다.

깨뜨린 병을 손에 쥔 A 씨는 "내가 조합장인데, 과장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우리 집 주소를 모르냐, 사표 써라 안 쓰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당시 A 씨는 술에 취한 상태였다.

몇 달 뒤 A 씨는 또 다른 과장 C 씨를 협박하기도 했다. 이번에는 노조에 가입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A 씨는 빈 소주병을 한 손에 든 채로 C 씨의 다리를 발로 걷어차는 등 폭행했다. A 씨는 이날 역시 술에 취한 상태였다.

A 씨는 'XXX야, 왜 노조에 가입했냐?', 'XXX, 내 등에 칼을 꽂아?'라는 등 C 씨를 향해 모욕적인 말도 서슴지 않았다. 게다가 노조를 탈퇴하지 않으면 다른 지역 근무지로 보내겠다고도 협박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A 씨는 또 축협 식당에서 만취한 상태로 신고 있던 신발을 벗어 직원 D 씨를 여러 차례 폭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를 말리던 또 다른 직원 뺨도 때렸다. 뺨을 맞은 직원은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등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병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A 씨는 피해를 본 직원들이 자신을 고소하면서 문제가 수면 위로 불거지자 3개월간 합의를 종용하며 피해 직원들과 그 가족들에게 36차례에 걸쳐 전화하거나 47통의 문자를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 또 피해 직원의 주거지와 병원을 찾아가 기다리는 등 스토킹하기도 했다.

A 씨는 특수폭행과 특수협박, 스토킹범죄의 처벌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돼 법정에 섰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은 피해자들의 자율권을 침해할 정도로 모멸적인 방법으로 범행을 해 큰 상처를 줬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추가적인 스토킹 범죄까지 저질러 실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며 A 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

검사와 A 씨는 양형부당을 이유로 항소했다.

법정에서 A 씨는 재판부를 향해 호소했다. 그는 "피해를 본 직원들에게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 수감 기간 피해 직원들이 마음의 상처가 아물고 있는지 잊은 적 없다"며 "이기지 못할 술을 마시고 몹쓸 짓을 했다. 선처해 주시면 사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울며 선처를 구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의 판단도 원심과 같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여전히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고 엄중 처벌을 탄원하고 있는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원심의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인 범위를 벗어나 무겁거나 부당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kyohyun2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