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업소만 몰아내면 끝?…선미촌 떠난 예술인들 “답답하다”
중단된 선미촌정비사업에 전주시 서노동송 을씨년스럽기까지
예술인들 “예술인들의 노력 사라져서는 안 돼…특별한 곳 만들어야”
- 임충식 기자, 장수인 기자
(전주=뉴스1) 임충식 장수인 기자 = 전북 전주시 서노송동에 위치한 성매매집결지인 선미촌을 대상으로 한 정비사업인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선미촌 문화재생사업)’은 한때 전국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던 사업이었다. 세월이 흐른 지금은 다소 줄어들긴 했지만 관심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관심이 뜨거웠던 이유는 이 사업이 가진 성격 때문이었다. 선미촌 문화재생사업은 행정기관에서 주도한 사업이 아니라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실제로 여성인권가와 예술가, 도시재생 전문가, 지역주민들로 구성된 ‘선미촌정비민관협의회’가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전면개발이 아닌 점진적 기능전환을 통한 문화예술촌 조성이라는 것도 이 사업만이 가진 차별화된 색깔이었다. 기능전환의 핵심은 성매매여성 인권보호, 예술 등 거점 공간 조성이었다. 이 모든 사업의 주요 방향은 역시 선미촌정비민관협의회 소속 위원들의 고민 끝에 나왔다. 본격 사업에 시작된 것은 지난 2017년이다.
사업은 차질 없이 진행됐다. 전주시는 2017년 6월 선미촌 성매매업소를 사들여 현장시청을 설치한 것을 시작으로 Δ물결서사(예술책방) Δ시티가든(마을정원) Δ성평등전주 커먼즈필드(주민협력소통공간) Δ노송늬우스박물관(마을사박물관) Δ새활용센터 다시봄 등을 조성했다. 전시활동과 공연이 가능한 문화예술복합공간도 둥지를 틀었다.
사업이 진행되면서 2002년 85곳에 달하던 성매매업소는 지난 2021년 모두 사라졌다. 그리자 곧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선미촌 곳곳에 위치한 문화공간을 찾았다. 주민소통 공간인 성평등전주 커먼즈필드에 위치한 카페에는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로 붐볐다. 여행길(전주고~여성인권센터)을 걷는 시민들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범죄 발생 건수 감소는 덤이었다. 실제 서노송예술촌 일대에서 경찰에 접수된 112 신고를 보면 2015년 1만 8000여 회에서 지난 2021년 1만 2000여 회로 줄어들었다.
이 같은 변화에 선민촌 문화재생사업을 벤치마킹하려는 타 지자체 관계자들의 방문도 잇따랐다. 문재인 정부 당시 김부겸 총리와 김창룡 경찰청장도 방문, 우수사업이라는 극찬과 함께 적극적인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022년 사업이 중단됐다. 현장 시청역할을 했던 ‘서노송예술촌팀’도 조직개편으로 ‘도시정비관리팀’으로 통폐합 됐다. 협의회는 아직 존재하지만 말 그대로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이마저도 올해 안에 해체될 거승로 예상된다.
뚜렷한 이유 없이 사업이 중단되면서 그동안 200억 원이 넘게 투입된 예산도, 2단계 사업을 통해 성착취를 묵인하고 지냈던 선미촌 60년의 역사를 기억하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계획도 모두 물거품이 됐다.
선미촌 거리 역시 활기를 잃었다. 지원이 줄어들면서 입주했던 청년 예술가들도 대부분 떠났다. 성매매업소가 떠난 빈집은 2년 가까이 방치되면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까지 풍기고 있다.
허갑수 전주시 도시정비과장은 “선미촌 문화재생사업 1차 목표는 성매매업소의 퇴출이었다. 행정 입장에서는 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났다고 볼 수 있다”면서 “이곳에 대한 활성화 문제는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건물주와 토지주의 입장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며, 예산부족으로 구입 역시 힘든 게 현실이라 관에서 주도하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중단된 사업은 바라보는 예술인들은 시선은 곱지 않다. 이곳이 입주했었던 예술가들은 “정말 답답하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A 작가는 “이곳에 있는 예술가들이 예술가이기 전에 청춘의 한 부분을 이곳에서 보낸 청년들이다. 예술인들이 모인 곳이라고 돈이 안 되고, 인권과 환경이 어렵고 필요 없는 곳이라는 편견 때문에 선미촌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면서 “아직도 외부에서 이곳을 보러오는 관광객들이 있고, 단체들이 있다. 지금도 전국적으로 뜨거운 시선으로 선미촌을 바라보는 만큼, 없애려고만 하지 말고 이곳을 어떵게하면 청년들이 머물 수 있는 곳으로 만들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B 작가는 “선미촌에 자리 잡은 문화공간은 예술가들뿐 아니라 시민들과도 약속하고 이어온 것들이다. 이런 무형의 가치들을이 외면당하고 있는 것 같다서 답답하다”면서 “지금은 많이 떠났지만 아직도 예술가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시장이 바뀌면서 서노송예술촌이 황폐화됐다, 흉물이 됐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으면 정말 좋겠다”고 강조했다.
C씨 역시 “많은 예술인들이 쫓기듯 그곳을 나왔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수년의 시간동안 선미촌을 예술촌으로 만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는데, 단순히 어떤 행정적 경제논리를 따져서 재개발한다고 하니 아쉬움이 크다”면서 “선미촌이 전주시민들에게 좀 더 편안한 곳이 될 수 있도록 행정에서 다각적인 고민을 했으면 한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이곳에 각각 1만㎡ 규모의 2개 단지에 모두 600 세대의 아파트를 건립하겠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A 작가는 “건물주와 토지주, 전주시 등은 경제논리에 따라 아파트가 들어서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면서 “당장 이곳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는 것은 이런 건 아니지만, 대체할 수 없는 예술‧문화 사례가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다. 특히 지금도 전국적으로 많은 지자체 등이 뜨겁게 바라보고 있는 점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94chung@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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