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 윤희를 아시나요' 87세 아버지의 절규 "죽기 전에 꼭 찾았으면"

이윤희 아버지 이동세 씨 인터뷰
강원도 철원서 만난 이 씨…집안 곳곳 18년간 ‘실종사건’ 사투 흔적

편집자주 ...'실종자 가족'이라 불리는 이들의 소원은 단 한 가지, 잃어버린 딸·아들의 생사여부다.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으면 경찰의 도움조차 받을 수 없는 만 18세 이상 성인실종자 가족들도 마찬가지다. 18년 전 발생한 '전북대 수의대 이윤희 실종사건'을 통해 성인실종자 가족들이 겪는 고통과 이들이 왜 성인실종법 제정을 요구하는지를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

지난 8월 강원도 철원군에서 만난 이동세 씨. 2024.10.8/뉴스1 장수인 기자

(전북=뉴스1) 장수인 기자 = "우리 윤희가 사라지고 18년이 넘는 시간을 사건만 파헤치면서 살았어요. 아직도 '그때 그놈이 왜 나한테 그 말을 했을까' 계속 생각하게 돼요. 나처럼 이런 고통을 다른 성인실종자 가족들은 안 느꼈으면 좋겠어요."

지난 2006년 6월 '성추행'과 '112'라는 두 단어 검색을 마지막으로 사라진 전북대학교 수의대생 이윤희 씨의 아버지 이동세 씨(87)가 깊은 한숨과 함께 한 말이다.

'전북대 수의학과 이윤희 실종사건'은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다. 수많은 보도와 프로그램이 제작‧방영되면서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된 사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18년이 지난 지금 이윤희 씨는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다. 생사 확인조차 아직이다.

폭염이 이어지던 지난 8월 전북 전주에서부터 322km를 달려 강원도 철원군에서 이동세 씨를 만났다. 한적한 마을에 터를 잡은 조립식 건물에서 아내 송화자 씨(84)와 함께 만난 이 씨의 첫 마디는 "먼 길 오느라 고생이 많았다"였다. 노부부의 표정과 말에서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 씨의 안내로 들어간 집안 곳곳에는 윤희 씨의 사진이 붙어있었다. 긴 세월이 지났음에도 이 씨가 여전히 막내딸을 향한 그리움을 가슴에 품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지난 8월 강원도 철원군에서 만난 이동세 씨. 2024.10.8/뉴스1 장수인 기자

이 씨는 "어느 날 둘째 딸한테 전화가 왔어요. 윤희가 사라졌다고요.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죠"라며 마른침을 삼켰다.

막내딸 윤희 씨는 전북대 수의학과 4학년 재학시절이던 2006년 6월 6일 새벽 2시 30분께 전주시 덕진동 음식점에서 교수, 학과 동료들과 종강 모임을 가진 뒤 혼자 살던 금암동 자취방에 귀가한 뒤 사라졌다. 윤희 씨가 실종된 뒤 이 씨의 삶과 꿈, 그리고 시간, 모든 것이 멈췄다.

전북 군산이 고향인 이 씨는 졸업 후 동물병원을 운영하게 될 막내딸 윤희 씨를 위해 연고도 없는 강원도 철원에 3000여평에 달하는 땅을 구입했다. 그는 딸과 함께 펼쳐질 제2의 장밋빛 인생에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하지만 축사 준공을 앞둔 2006년 6월 8일 정오께 윤희 씨가 사라졌다는 전화를 받으면서 모든 것이 무너져버렸다.

이 씨는 윤희 씨가 아픈 동물들을 보호하고 치료할 때 쓰길 바라며 지었던 축사를 바라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축사 옆에는 또 다른 꿈인 '숯가마찜질방'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탈의실까지 다 갖춰진 채 폐건물이 된 공간에는 먼지만 두텁게 내려앉아 있었다. 이곳에도 윤희 씨가 전주의 자취방에서 사용하던 물품과 책이 가득했다.

윤희 씨가 초등학교 3학년쯤 됐을 때 찍은 가족사진을 보던 이 씨는 "너무 예쁜 딸이었다. 6개월만 더 있었으면 대학을 졸업하고 원하던 수의사가 됐을 텐데,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윤희가 사라지고 모든 것이 사라졌다. 하지만 지금도 돌아오길 바라고 있다. 윤희에 대한 많은 추측들이 있지만 나는 반드시 어디선가 살아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

그러면서 "윤희 자취방에 자주 놀러 왔던 한 남학생이 어느 날 '윤희 누나는 살아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순간 아무 말도 못 했던 게 아직도 후회된다"며 "왜 그런 말을 했던 건지 지금도 너무 묻고 싶다"고 말했다.

2006년 6월 실종된 전북대 수의대생 이윤희 씨.2024.10.8/뉴스1 장수인 기자

딸이 사라진 뒤 엉망이 된 자신의 삶도 쏟아냈다.

이 씨는 딸이 실종된 뒤 자취방에서 5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매일 학교에서 전단지를 나눠줬다. 하지만 학생들의 무관심에 상처만 입고 말았다. 다시 철원으로 온 뒤에도 그는 오로지 딸을 찾는 일에 매달렸다. 주변의 도움으로 블로그를 만들고, 책도 썼다. 그리고 최근에는 성인 실종법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이 씨는 "아동실종의 경우는 법적으로 경찰의 수사가 바로 이뤄질 수 있지만 성인실종자는 휴대전화 위치 추적도 불가하다"며 "당시 윤희가 실종됐을 때도 성인실종자에 대한 경찰 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다면 이렇게까지 긴 시간 사건에 매달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지금까지 사건만 생각하며 살진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금도 살아 있을 거라고 믿고 있는 윤희 씨에게도 한마디 했다. 그는 "윤희야 지금 주위에서 누가 어떻게 조종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결국 밝혀질 수밖에 없어. 죽기 전에 너를 보고 싶어 하는 부모들을 위해서라도 지금까지의 상황을 다 접고 사건이 해결되는 방향으로 노력해 줬으면 고맙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올해는 반드시 찾아야지. 그러려고 올해는 텃밭에 고추도 깻잎도, 아무것도 안 심었어"라고 말하는 이동세 씨의 얼굴에는 슬픔과 함께 굳은 각오가 묻어있었다.

soooin92@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