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시민 안전이 우선이죠"…현장에서 설 보내는 완산소방대원들

명절 당일 30여명 근무…"가족들도 격려, 책임감 느껴"
소방차 곳곳엔 까만 분진…"인명 피해가 가장 힘들어"

전주완산소방서 구조대원들이 설 당일인 10일 오전 10시30분께 신고를 받고 전주시 만성동으로 출동하고 있다.2024.2.10./뉴스1 김경현 수습기자

(전주=뉴스1) 김혜지 기자 김경현 수습기자 = 설날인 10일 오전 10시께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완산소방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자 벽면에 설치된 큼지막한 모니터가 눈에 들어왔다. 화면에는 출동 지령서와 각종 보고서가 잔뜩 띄워져 있었다.

책상에 놓인 무전기에서는 현장에 출동한 대원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신고를 알리는 전화벨 소리도 연신 울렸다. 소방대원들은 한손으로는 전화를 받고 다른 손으로는 컴퓨터 마우스를 바쁘게 움직였다.

이날 완산소방서 근무 인원은 30여명. 설 당일에도 사무실 분위기는 평소처럼 분주했다. 대원들 모두 밀려오는 전화 대응과 서류 업무에 집중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출동 지령이 떨어질까봐 화장실 가는 것도 조심스럽기만 하다. 완산소방서에는 하루 평균 8건에서 많게는 15건의 출동 건수가 발생한다고 한다.

오전 10시30분께 '긴급 출동'을 알리는 출동 지령이 사무실 내부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자 구조 대원들은 눈빛이 달라졌다. 신고는 '집에 있는 아내가 연락도 되지 않고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대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무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장비를 갖추고 차량에 탑승하는 데까지는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함께 올라탄 소방차 내부는 각종 화재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대원들의 노력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차 안에는 탄 냄새가 풍겼고, 내부 곳곳엔 새까만 분진도 묻어있었다.

대원들을 태운 소방차는 사이렌을 울리며 귀성객 차량으로 가득한 도로를 뚫고 달렸다. 뒷좌석에 탑승한 119구조대 2팀 박광규·정상엽 소방교는 교차로를 지날 때마다 창밖으로 빨간색 안전봉을 흔들며 차량을 통제했다.

신고가 들어온 장소는 전주 만성동 한 아파트. 완산소방서에서 차로 20분 거리였다. 현장에 도착했을 때까지 신고자는 아내와 연락이 닿지 않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본부로부터 대원들에게 귀소 명령이 내려왔다. 알고 보니 전날 부부싸움을 해 화난 아내가 집 문을 열어주지 않았던 것이었다. 허탈할 법도 하지만 대원들은 "다행이다"며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박·정 소방교는 "인명 피해도 없었고 잘 마무리된 것 같다"며 "이제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 긴장한 상태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오전 11시30분께 소방서로 복귀한 대원들은 식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명절 연휴에는 식당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달음식을 시키는 것도 쉽지 않다. 사무실 한편에 놓인 밥솥에서 '취사가 완료됐다'는 음성이 나오자 대원들은 한 명씩 접시에 밥을 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스피커에선 또 다시 출동을 알리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대원들은 뜨거운 김이 나는 밥그릇을 그대로 둔 채 다시 현장으로 출동했다.

우길대 현장대응단 지휘조사2팀장은 "명절에 이렇게 나와 근무한 지도 어느덧 30년이 됐다"며 "제 휴일보다 시민들 안전을 챙기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전엔 가족들이 많이 섭섭해했는데 지금은 이해해주고 격려해준다"며 "그렇기 때문에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며 미소를 띠었다.

우 팀장은 "인명 피해가 발생할 때 가장 힘들다. 사고 현장을 보고 나면 오랫동안 머리에 맴돌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때도 있다"며 "하지만 최대한 빨리 털어내고 다음 사고에 집중해 대처하는 게 저희의 숙명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전북소방본부는 설 연휴 동안 안전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오는 13일까지 일제히 특별경계근무에 나서고 있다.

iamge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