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생명 존중하면서 업주 생존권은?"…개 식용 금지 하소연
2027년 시행…"생계 막막" 전주지역 업주들 반발
동물권 단체 "마침표 찍어야"…지자체 "대책 검토"
- 김혜지 기자, 김경현 수습기자
(전주=뉴스1) 김혜지 기자 김경현 수습기자 =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는데 폐업하고 뭘 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지난 12일 오전 11시께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 보신탕집 주인 A씨(60대)는 최근 '개 식용 금지법'이 통과됐다는 소식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이렇게 말했다.
20년 넘게 개고기 요리를 팔아온 A씨 가게에선 오리주물럭 등도 팔지만, 최고 인기 메뉴는 개고기 수육과 전골이라고 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A씨 식당 좌석 40여 개는 순식간에 모두 찼다. 손님들은 자리에 앉자마자 개고기 수육과 전골을 시켰다. 밀려오는 주문에 A씨는 주방과 카운터를 쉴 틈 없이 오갔다. 하지만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다.
A씨는 "식당은 개를 도살하는 곳이 아니라 신선한 개고기를 납품받아 맛있게 요리만 할 뿐"이라며 "비양심적인 일부 개 사육장과 도축업자 때문에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우리만 길바닥에 나앉게 생겼다"고 토로했다.
평소 개고기를 즐겨 먹는 손님들도 안타까워했다.
이날 개 수육을 먹은 박모씨(72)는 "새해가 되면 몸보신을 하기 위해 이 식당을 찾는다"며 "개고기는 어릴 때부터 먹던 추억의 음식인데 이번 법 통과로 더 이상 못 먹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개를 비롯해 동물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세상이 바뀌는 건 어쩔 수 없다"며 "손님이야 다른 음식을 먹으면 그만이지만 개고기를 못 파는 업주들 생계는 어떡하냐"고 했다.
지난 9일 식용 목적으로 개를 사육·도살·유통·유통·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특별법(개 식용 금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개고기를 유통·판매해온 업주들이 반발하고 있다.
특별법은 식용 목적으로 개를 도살하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 개를 사육하거나 증식·유통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게 핵심이다.
다만 처벌은 유예 기간을 뒀다. 벌칙 조항은 법안 공포 후 3년 후인 2027년부터 시행된다.
개고기 유통·판매업자들은 "국회가 구체적인 대안 없이 법안부터 통과시킨 건 업계 생존권을 무시한 처사"라고 주장했다. 법안을 통과시키기 전에 업주들이 생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금 제공이나 일자리 연계 등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전주 한 전통시장에서 20년째 건강원을 운영하고 있는 B씨(70대·여)는 특히 정치권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못했다.
B씨는 "개고기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한다"며 "하지만 정치인들이 개 생명은 존중하면서 왜 업주들의 생존권은 무시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나이가 먹어 다른 일자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며 "병원비 때문에 이 일을 놓을 수도 없는 상황이라 막막하다"고 했다.
다른 개고기 식당 주인 C씨(65)는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며 "개를 키우고 도축하는 과정에서 비윤리적이고 불법적인 행위가 생기는 건데 문제가 있는 부분을 개선하고 법을 어긴 사람만 처벌해야지 왜 애먼 우리한테 불똥이 튀느냐"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 "개고기 음식점은 단골 장사라 월세가 싼 도시 변두리에 자리를 잡아도 그럭저럭 수지타산이 맞는다"며 "하지만 백반집 등 일반 식당으로 바꾸려면 유동 인구가 많은 시내 쪽으로 옮겨야 하는데 임대 비용부터 큰 부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작 전주시에선 지원 대책은커녕 대뜸 '2027년부터 (개 식용은) 불법이니 그때까지 돈 많이 번 다음 폐업하라'는 안내 전화만 왔다"고 덧붙였다.
반면 개 식용 금지법 통과에 반려동물을 키우는 시민과 동물권 단체들은 반기는 분위기다.
8년째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는 시민 김모씨(60)는 "개 식용 금지는 자연스러운 시대적 흐름"이라며 "동물복지 증진을 위한 첫 단추를 꿴 것 같다"고 말했다.
동물권단체 '케어' 관계자는 "처벌 조항 시행까지 3년의 유예 기간을 준 건 아쉽지만, 동물 권익을 위한 국회의 신속한 행동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며 "하루속히 개 식용 산업이 마침표를 찍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재 도내에서 개고기를 팔거나 이를 원료로 식품을 만들어 파는 식당은 20여 곳 정도다. 하지만 일부 음식점이나 흑염소집에서도 보신탕·영양탕 등 이름으로 개고기 요리를 판매하기도 해 실제 관련 식당은 더 많을 것이라고 업계 관계자는 추정했다.
정부는 다음 달부터 개고기 식당 등 실태 파악에 나서는 한편 폐업이나 업종 변경 등을 위한 대책을 세울 방침이다.
전북도 관계자는 "개 식용 금지법은 국회를 통과했지만, 관련 업계에 대한 지원 대책은 아직 검토 단계"라며 "개 사육 농장과 음식점 수도 현재로선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iamg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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