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의 '비극'…코 고는 소리에 70대 치매 환자가 동료 환자를[사건의 재구성]

"병원 벗어나 자유 얻으려고"…1·2심 징역 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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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뉴스1) 김혜지 기자 = "병원에서 벗어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전북 전주시의 한 요양병원 환자였던 A씨(72)는 법정에서 같은 병실 환자 B씨(80대)를 목 졸라 살해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다.

치매, 섬망 증상을 앓던 A씨는 "B씨에게 미안하지만 내가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파킨슨병과 치매 환자였던 B씨는 A씨 범행으로 잠든 상태에서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70대 병약한 환자 A씨는 왜 살인자로 전락했을까.

A씨의 병원 생활은 지난 2020년 7월부터 시작됐다. 하지만 A씨는 시간이 흐를수록 병원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커져갔다. 의료진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치료는 해주지 않고 억지로 잠만 재운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병원 관계자들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느낌에 공포에 휩싸이기도 했다.

그러던 지난해 2월20일 오후 9시50분께 A씨는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이날 A씨는 B씨의 코 고는 소리에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A씨의 분노는 치밀대로 치밀었고, B씨를 살해해야겠다는 마음으로까지 이어졌다.

A씨는 이때 B씨를 살해하면 교도소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고 이 지긋지긋한 병원 생활을 끝낼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A씨의 잘못된 판단은 곧바로 실행으로 옮겨졌다. 그는 병상에 있던 압박 붕대를 집은 뒤 B씨가 누워있는 병상으로 기어 올라갔다. 그리고 잠든 B씨 목에 붕대를 감고 힘껏 조였다. B씨는 결국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선 A씨는 자신의 범행은 순순히 인정했다. 하지만 "제 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선처를 호소했다. 중증 치매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심신미약 또는 심신상실 상태에서 범행했다는 주장이었다.

심신상실은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상태로, 이 경우 심신미약과 달리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

A씨에 대한 1심 재판은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됐다. 배심원 7명은 만장일치로 A씨에게 유죄 평결을 내렸다. 하지만 심신상실 상태였다는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심신미약 주장은 인정했다.

양형과 관련해서는 배심원 7명 중 4명은 징역 7년, 2명은 징역 5년, 1명은 징역 8년이 선고돼야 한다고 의견을 냈다.

1심 재판부인 전주지법 제13형사부(부장판사 이용희)는 배심원 판단과 같이 심신상실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자신의 행동이 타인의 신체적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로서 교도소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범행했기 때문에 심신상실로 보긴 어렵다는 게 재판부 판단이었다.

양형과 관련해서는 "피고인은 자신의 자유를 되찾겠다는 목적으로 국가와 사회가 보호해야 할 가장 존귀하고 절대적 가치인 인간의 생명을 침해하는 중대 범죄를 저질렀다"며 배심원 다수가 의견을 낸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러자 검찰은 "A씨 형이 가볍다"며 항소장을 제출했다. A씨에게 양형기준상 특별 감경 요소인 '심신미약'을 적용한 것은 부당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광주고법 전주재판부 제1형사부(부장판사 백강진)는 지난달 13일 "배심원들의 양형 의견까지 고려해 피고인에게 선고한 형이 재량의 한계를 벗어나 파기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가볍다고 보기 어렵다"며 "검사가 당심에서 주장하는 양형 부당 사유는 모두 원심이 형을 정하면서 고려한 사정들이고 피고인에 대한 양형 조건이 실질적으로 변경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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