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에 왔는데 허탕"…'꽁꽁' 얼어붙은 건설업계 일용직 한숨만
"하루 벌어 하루 사는데…일감 사라질까 막막"
폐업 시공사 전년 대비 21건 ↑…구인률 40%↓
- 김혜지 기자, 김경현 수습기자
(전주=뉴스1) 김혜지 기자 김경현 수습기자 =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나왔는데 일감이 계속 줄어서 걱정이에요."
29일 오전 5시께 전북 전주시 덕진구 금암동 시외버스터미널 인근의 한 인력사무소.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이른 시간임에도 10평 남짓한 사무소 안에는 일자리를 구하러 온 사람들로 빼곡했다. 추위를 뚫고 온 중장년층 남성 10여명은 코끝이 빨개진 채 난로 앞에 다닥다닥 앉아 있었다.
몸을 녹이던 이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기도 했다. "평생 전기기술직에서 일하다가 시멘트가 가득 담긴 리어카를 끌려고 하니 힘들어 죽겠다"는 한 남성의 말에 옆에 있던 남성은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들은 대화를 하면서도 중간중간 사무소 직원이 호명할 때마다 고개를 돌렸다. 이름이 불린 이들은 주섬주섬 장비를 챙겨 사무소 밖으로 나갔다.
사무소 앞 거리에는 털모자, 목도리, 장갑으로 무장한 구직자들이 담배 연기만 연신 내뿜으며 자신의 차례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17년째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고 있는 황영진씨(54·전주)는 "우리같이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사람은 일당이 적든 많든 꾸준히 일을 해야 한다"며 "이번 주는 일이 없어 3일밖에 출근하지 못했다. 오늘도 일을 못 구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1시간쯤 지나자 인력사무소 소장 이모씨(60대)는 남아 있는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오늘 다 마감됐다. 내일 다시 오라"고 말했다. 그때까지 자리를 지키던 구직자 5명은 아쉬운 표정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노모씨(37·전주)는 "연말이라 돈 나갈 곳도 많은데 요즘 일이 없어 계속 출근을 못 했다"며 "오늘 새벽 5시부터 나왔는데도 허탕을 쳤으니 내일은 1시간 더 일찍 나올 예정"이라고 했다.
3년 전만 해도 일자리가 구직자보다 많았는데 최근에 건설업계가 침체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 소장은 "겨울철이 비수기임을 감안하더라도 작년 겨울에 비해 구인율이 40%정도 감소했다"며 "건설업체들이 줄줄이 폐업하면서 일자리가 줄어든 탓"이라고 했다.
기자가 이날 방문한 전주지역 인력사무소 5곳의 업주들은 건설업계의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미분양 주택'을 원인으로 꼽았다. 미분양 주택 증가로 주택 신축 공사가 줄다 보니 일감이 없는 건설 업체들은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는 것이다.
국토교통부가 통계누리에 공개한 '미분양 주택 현황 보고'를 보면 올해 10월 기준 전북지역 미분양 주택은 3227호로, 전년(1844호) 대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에 등록된 올해 11월 기준 전북지역 종합공사업체(시공사)의 폐업 신고 건수는 34건으로 파악됐다. 지난해(13건)보다 21건이 늘어난 수치다.
건설업계 안팎에서는 최근 대형 건설사들의 도산 위기 우려가 커지고 있는 만큼 당분간 이 같은 어려움은 지속될 거란 전망이 나온다. 특히 전날 시공능력 16위인 태영건설마저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을 신청해 업계는 큰 충격에 빠진 분위기다.
전북지역에도 영향은 있다. 현재 태영건설과 함께 추진되고 있는 도내 사업은 '전주 에코시티 15블록 데시앙 아파트', '전주대 이전 및 개발사업(천마지구 사업)', '익산 부송4지구 데시앙 아파트' 등이다. 이 중 천마지구 사업은 태영건설이 지분 40%를 가지고 있어 대표 기업이 빠지면 차질이 불가피할 거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대한전문건설협회 전북도회 관계자는 "금리도 많이 높아져 현금 유동성도 나빠졌고, 원재료 값이 많이 올라가 건설업계가 매우 힘든 상황"이라며 "단언할 수는 없지만 단기간에 회복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iamg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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