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백경사 살해' 피의자…대전 은행 강도·살인사건 범인 이정학

[2023 전북 10대 뉴스]④'전주 백경사 피살 사건' 21년만에 송치

편집자주 ...다사다난했던 2023년이 며칠 남지 않았다. 올해 전북은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파행과 새만금SOC 예산 삭감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는 올 한 해 전북을 뜨겁게 달군 10대 뉴스를 선정해 3일에 걸쳐 나눠 싣는다.

전북경찰청은 청사 안에 '추모의 벽'을 만들고 2002년 9월 추석 명절 근무 중 괴한의 습격을 받고 순직한 백선기 경사(순직 후 경위로 추서)를 추모하고 있다/뉴스1 DB

(전북=뉴스1) 강교현 기자 = '전주 백경사 피살 사건'의 진실이 마침내 밝혀졌다. 사건 발생 21년 만이다.

지난 6월 '전주 백경사 피살 사건' 피의자 이정학(52)이 검찰에 넘겨졌다. 이정학은 2002년 9월20일 밤 전북 전주시 금암동의 한 파출소에서 홀로 근무하던 백선기 경사를 흉기로 여러 차례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01년 대전 국민은행 강도 살인 사건'의 범인이기도 한 이정학은 현재 강도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수감돼 있다.

◇'전주 경찰관 피살 사건'…2002년 그날밤 파출소에서 무슨 일이?

추석 연휴가 시작되던 2002년 9월20일 자정을 넘긴 시각. 전북 전주시 금암동 전주북부경찰서 금암2파출소 앞.

야간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던 경찰관 2명은 눈 앞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아연실색했다. 혼자 파출소 안에서 근무를 보고 있던 백선기 경사(당시 54)가 온몸에 피를 뒤집어 쓰고 바닥에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백 경사는 가슴과 목 등 6곳을 흉기에 찔린 채 발견됐다. 현장에 있던 38구경 권총 1정과 실탄 4발, 공포탄 1발은 범인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파출소 안에서 현직 경찰관이 잔인하게 살해된 전대 미문의 사건은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경찰은 파출소 주변 도로와 건물, 공터 등에 대한 수색 작업을 벌이는 등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용의자 검거에 나섰다. 당시 전주시내 곳곳에서는 무장 병력이 2차 범행 방지를 위해 배치되기도 했다. 현상금 2000만원을 내걸기도 했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사건은 발생 4개월만에 새 국면을 맞았다. 경찰이 20대 초반의 용의자 3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하면서다. 이들이 무면허 오토바이를 타다 백경사 단속에 적발됐고, 압수된 오토바이를 훔치기 위해 파출소로 들어가 범행했다는 것이 수사 결과의 내용이었다.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 하던 사건은 물증이 발견되지 못하며 다시 반전됐다.

경찰은 이들이 범행에 사용한 흉기와 사라진 권총 등 직접적인 증거물을 찾지 못했다. 결국 용의자들이 "고문과 가혹 행위로 인해 허위 자백했다"며 진술을 뒤집었고, 풀려났다.

그렇게 사건은 미궁속으로 빠졌고,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게 됐다.

이승만이 경찰에 보낸 편지.(전북경찰청 제공)2023.6.29뉴스1

◇경찰에 온 편지…이승만 "사라진 총기 숨겨진 장소 알아"

그렇게 2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사건은 점점 잊혀져갔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지난 2월 어느날 전북경찰청으로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편지를 보낸 사람은 ‘2001년 대전 국민은행 강도 살인 사건’의 범인인 이승만(52)이었다. 그는 편지를 통해 "백 경사 살인 사건에서 사라진 총기가 숨겨진 장소를 알고 있다"며 권총을 숨긴 위치를 진술했다.

편지를 받고 경찰은 이틀 후 이승만을 직접 만났다. 그의 기억은 제법 구체적이었다. 진술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한 경찰은 압수수색 영장을 들고 이승만이 말한 현장으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철거를 앞둔 울산의 한 숙박업소였다. 경찰은 화장실 바로 옆 방의 천장에서 권총 1정을 찾았다.

38구경 권총이었다. 경찰은 떨리는 마음으로 녹슨 총의 총기 번호를 확인했다. ‘4280’. 21년 전 살인사건 현장에서 사라진 바로 그 총이 20년6개월만에 발견되는 순간이었다.

2002년 피살된 백선기 경사의 총. 이 총기는 21년이 지난 2023년 전북경찰청의 압수수색을 통해 울산의 한 숙박업소 천장에서 발견됐다.(전북경찰청 제공)2023.6.29뉴스1

◇경찰, 이정학 단독범행 결론…21년만에 사건 송치

사건 해결의 중요한 단서를 찾은 경찰은 전담수사팀을 꾸려 관련 수사에 본격 돌입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승만은 이정학의 요청을 받고 이곳저곳에 권총을 들고다니며 숨기다 자신이 달방생활을 하던 여관 천장에 권총을 숨겼다. 배관공 기술을 습득한 이승만은 이후 중동 지역으로 해외 근무를 나가며 권총을 숨긴 사실을 잊었다고 했다.

애초 경찰은 이정학을 범인으로 지목한 이승만의 공동 범행에도 무게를 뒀으나 114일간 이어진 수사 끝에 결국 이정학의 단독 범행으로 판단했다.

제보자인 이승만의 진술이 대부분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된 반면, 여러차례 번복된 이정학의 진술에서는 모순점들이 다수 드러났기 때문이다.

경찰은 사건이 발생한 추석 이틀 전부터 이승만이 전주가 아닌 대구 본가에 가있었던 사실을 확인했다. 이승만은 학교 입학을 앞둔 자신의 딸을 만나기 위해 가족이 있는 대구를 찾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도 이승만은 적극적으로 자신이 이 사건과 관련이 없음을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이정학은 경찰에 "전주에 가본적도 없다"고 진술했으나, 이는 거짓말로 드러났다. 이정학은 전주에 수시로 방문해 지인을 만나거나, 불법 음반을 판매하기도 하면서 지리감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이정학의 주장이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대목이 있었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경찰은 범행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두 사람을 상대로 두 차례의 대질 조사 등 각각 10회가 넘는 조사를 벌였고, 당시 현장과 목격자 등을 상대로 과학수사를 진행한 끝에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를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경찰은 이정학을 강도살인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그는 송치 전까지 자신의 범행을 부인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대법원은 최근 '22년 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을 벌여 강도살인 혐의로 기소된 이정학과 이승만의 상고를 모두 기각하고 원심에서 선고된 무기징역을 확정했다. 이들은 2001년 12월21일 오전 10시께 대전 서구 둔산동에 있는 국민은행 지하 주차장에서 직원 1명에게 권총을 발사해 숨지게 하고 3억원이 들어있는 가방을 챙겨 달아난 혐의로 기소됐다.

kyohyun2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