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 vs "프리랜서"…법 사각지대 놓인 학원 강사들
퇴직금 지급 두고 법정 다툼…노동청 "근로자 인정"
원장 "부당이득반환 소송…강사에 퇴직금 매달 지급"
- 김혜지 기자
(전주=뉴스1) 김혜지 기자 = "월급인 줄 알았는데 그게 퇴직금이었다네요. 황당했습니다."
A씨(34)는 지난 2017년 7월 전북 전주시 한 학원에 취직했다. 5년 뒤 결혼을 한 A씨는 올해 1월, 육아를 위해 학원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리고 원장 B씨에게 퇴사 의사를 밝히면서 "6년치 퇴직금을 정산해 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돌아온 B씨의 답변에 A씨는 당혹감을 느껴야만 했다.
B씨가 "퇴직금을 이미 줬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B씨는 "그간 통장 2개에 나눠 월급을 줬는데 그중 1개 통장에 입금한 돈이 퇴직금이었다"고 했다는 게 A씨의 설명이었다.
하지만 A씨는 "퇴직금을 미리 받겠다고 계약한 기억이 없다"고 주장했다. 학원에 처음 왔을 때 B씨가 내민 위탁강의계약서만 작성했을 뿐 해당 계약서 어디에도 퇴직금 관련 내용은 없었다는 것이다. 첫 계약 당시 250만원을 받기로 계약했고, 2019년부터는 매달 260만원을 월급으로 받아왔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A씨에 따르면 애초 계좌 2개를 알려달라고 한 것도 B씨였다. B씨는 매달 24일 한 통장에는 220만~260만원, 다른 통장에는 0~30만원을 입금했다. 2개 통장에 들어온 금액은 그때그때 달랐다.
A씨는 "당초 B씨 학원에 취직했을 때 월급 250만원으로 계약했고 두 달 뒤 B씨가 고등부 한 클래스(수업)를 추가로 맡아 달라고 해 1년 3개월 동안 30만원을 더 받았다"며 "이듬해 고등부 수업이 빠지고 난 뒤부터 한 달 정도는 다시 250만원을 받다가 B씨에게 '급여를 더 올려달라'고 요구해 2019년부터는 매달 총 260만원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매달 계약한 총 금액에 맞게 들어왔기 때문에 2개 통장으로 월급이 나눠 들어온 것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고, 심각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B씨와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자 A씨는 결국 고용노동부 광주지방고용노동청 전주지청에 "B씨가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진정서를 제출했다.
B씨는 고용노동청 조사에서 "애초 학원 강사들과 강의위탁계약을 체결하면서 퇴직금은 강사료 지급 통장과 별도 통장에 매월 분할 지급해 왔다. A씨도 동일한 조건으로 계약을 체결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청 근로감독관은 근로기준법상 A씨를 퇴직금 지급 대상인 근로자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업무 내용을 B씨가 정하고 업무 수행 과정에서 상당한 지휘·감독을 한 점 △B씨가 (근로) 장소 및 시간을 정하고 A씨가 이에 구속받고 있는 점 △(A씨가) 노무 제공을 통한 이윤 창출, 손실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지 않고 B씨 보수가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을 갖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삼았다.
다만 감독관은 "(매달) 별도로 30만원이 지급된 데에 현재까지 양측 진술이 엇갈리고 어떠한 명목으로 지급됐는지 확인할 수 없다"며 "양측이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매달 A씨가 받은) 230만원은 명확하므로 이를 기준으로 산정한 퇴직금 1219만9315원을 A씨에게 지급하라"고 주문했다.
결국 B씨는 노동청 조사 결과에 따라 지난 9월7일 세금을 공제한 퇴직금 1179여만원을 A씨에게 지급했다.
그렇게 마무리된 줄 알았던 A씨는 최근 깜짝 놀라고 말았다. 법원으로부터 날아온 소장을 통해 B씨가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B씨는 소장을 통해 "A씨가 매달 30만원씩 6년간 총 1790여만원 상당의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뉴스1과 통화에서 "애초 A씨와 (퇴직금 지급 대상이 아닌) 프리랜서 개념으로 시수 11만 5000원에 한 달에 20시간씩 일하는 조건으로 월 230만원씩 주기로 계약했다"며 "어떤 달은 20시간 미만으로 수업했는데도 230만원은 고정적으로 줬고, 오히려 퇴직금까지 알아서 챙겨준건데 A씨가 이렇게 나오니 저 또한 억울하다"고 말했다.
이어 "정규직이면 출퇴근 시간이 일정해야 하는데 학생들이 현장학습 등을 이유로 수업이 취소되면 A씨는 그다음 시간 수업 때 출근했다"며 "통장에 나눠 급여 등을 지급한 것은 노동청 한 감독관이 알려준 방법이고, 계약서에 퇴직금이라고 명시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길까봐 A씨와 구두로 협의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B씨는 또 "노동청에서는 한 가지 조건만 맞아도 근로자로 인정해 준다"며 "A씨 주장이 맞는다면 노동청에서 (A씨 월급으로) 260만원을 다 인정해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에 대해 A씨는 "프리랜서로 계약하면 보통 학생 수에 따라 학원 측과 5 대 5 또는 6 대 4 등 비율제로 급여를 계산하기 때문에 급여가 매달 다르다"며 "하지만 나는 시간표, 출퇴근 시간 모두 학원에서 정해주고 학생 수나 강의 시간과 상관없이 일정한 월급을 받은 근로자 신분이었다"고 반박했다.
이어 "애초 계약할 때 수업 시수와 퇴직금 등에 대해 들은 적이 없었고, 강의 중 B씨가 중간에 들어와서 위탁강의 계약서를 내밀고 '문제 없으니 쓰라'고 해서 썼을 뿐"이라며 "정규 수업 시간 외에 시험 기간엔 주말에도 학원에 나와 보충 수업까지 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와 관련해 도내 한 학원장은 "강사와의 근로 계약은 학원장 재량이기 때문에 결국 두 사람이 어떤 내용으로 계약했는지가 매우 중요하다"며 "위탁 계약 등 명칭이 중요한 게 아니라 법적으로 15시간 이상 강의를 하면 퇴직금을 주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A씨 사례처럼 학원 강사들 사이에선 근로자 인정 여부나 퇴직금 지급 여부를 두고 학원 측과 갈등이 속출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를 관리·감독하는 기관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교육청 관계자는 "강사 계약 내용은 전북교육청 점검 항목에 포함돼 있지 않다"며 "학원 명칭 사용·표기 위반, 등록 외 교습과목 운영, 수용 인원 초과, 학원 운영 시간 등이 점검 대상"이라고 말했다.
광주고용노동청 전주지청도 "매년 사업장(학원)을 선정해 사전 예방 차원에서 관련 교육을 하고 있다"며 "그러나 학원 측이 강사와 근로 계약을 어떻게 했는지는 들여다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후에 문제가 발생해 신고가 들어와야 조사 후 그에 따른 조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계 안팎에서는 "학원 강사는 근로자로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등 사실상 근로기준법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곽효정 전북교육자치연대 교육정책부장은 "모든 학원이 참고할 수 있는 강사 관련 표준 계약서가 마련돼야 또 다른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며 "학원 측과 법적 분쟁으로 넘어갔을 때에는 강사들이 노무사 등으로부터 법률적 조언을 얻을 수 있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iamg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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