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이들의 임실군 유학…부모들까지 농촌 ‘합류’로 이어져[지방소멸은 없다]
가족체류형 농촌유학학교 변신 성공 임실군 지사초
"그동안 할 수 없었던 합창도 축구게임도 가능해요"
- 임충식 기자
(전북=뉴스1) 임충식 기자 = 쌍둥이인 김은우·연우 형제(5학년)의 하루는 오전 7시50분에 시작된다. 다소 이른 시간이지만 학교에 가는 통학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서울에서 학교에 다닐 때보다 약 1시간 정도 일찍 일어나야 되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적응했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은우·연우 형제는 학교가 좋다. 반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장난치는 것이 너무 재미있다. 수업시간에 질문을 많이 할 수 있는 것도 큰 기쁨이다. 친하지 않은 반 친구도 없다. 형·누나와 동생들하고도 가족처럼 지낸다. 담임교사는 물론이고 교장선생님까지 모두 이름을 불러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도 마음에 든다. 전교생이 함께 간 수학여행은 아직도 이들 형제에게는 잊지 못할 좋은 추억이다.
하굣길에 만날 수 있는 풍경도 작은 기쁨이다. 논과 밭, 길가에 핀 꽃에서 정겨움마저 느낀다. 이름 모를 곤충은 지금도 여전히 신기하기만 하다. 이들 형제가 가끔 통학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서 집에 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서울에 살고 있던 은우·연우 형제가 전북 임실군에 위치한 지사초등학교에서 유학생활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10월부터다. ‘자연과 함께 생활하고 공부할 수 있다’는 엄마의 권유에 유학을 결심하게 됐다. 처음에는 낯선 환경에 힘들기도 했지만 지금은 대만족이다.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며 힘줘 말하는 모습에서는 진지함마저 엿보였다.
은우·연우군은 “자연에서 마음껏 공부하고 뛰어놀 수 있어서 너무 좋다. 지금은 친구들하고도 너무 친해졌다”면서 “마을 사람들도 오자마자 반겨주고 선물도 주고 너무 잘해주신다. 나중에 다시 서울로 간다면 여기가 많이 그리울 것 같다”고 말했다.
지사초는 면소재지에 위치한 6학급 학교임에도 전교생이 15명에 불과했다. 지난 2021년에는 교감자리마저 없어졌다.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농촌유학이었다. 이후 지난해 3월, 전주시에 거주하는 7명의 학생들이 전입하는 등 결실도 거뒀다. 이 과정에서 마을이장들이 800만원을 모아 학교에 전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전주에서 1시간 이상 걸리는 등굣길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았다.
본격적인 농촌유학은 지난해 8월, 전북교육청으로부터 ‘농촌유학협력학교’로 선정되면서다. 서거석 전북교육감은 당선 후 농촌유학을 적극 추진했다. 지역소멸로 인한 학교교육 붕괴를 막기 위한 차원이었다.
지사초가 가족체류형 농촌유학학교에 선정되자 임실군은 마을회관과 농가 등 7채를 수리, 유학생들이 거주할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11명(7가구)의 유학생을 맞이했다. 학생들의 부모도 7개 마을에 자리를 잡았다.
현재 지사초 전교생은 23명이다. 이 가운데 10명이 농촌유학생이다. 유치원까지 포함하면 26명 가운데 11명이다.
학생 수가 늘면서 변화도 시작됐다. 가장 큰 변화는 수업이다. 기존에는 대부분 1대1 수업이 이뤄졌다. 하지만 지금은 합창과 토론수업 등도 가능해졌다. 잔디 운동장에서 축구경기도 펼쳐진다. “학교에서 들리는 합창소리가 정말 눈물 나게 반가웠다”는 김혜숙 교장의 말에는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기존 학생들도 한층 밝아졌다. 유학생 친구들의 영향을 받아 학생들도 더욱 적극적이고 활발해졌다는 게 학교의 설명이다. 웃음소리도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함께 놀 수 있는 친구가 많아졌다는 게 농촌 학생들에게는 가장 큰 기쁨이다. 최준영군(5학년)은 “같이 놀러 다니고 축구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같은 학년인 신재웅군도 “함께 놀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아서 학교가 이전보다 재미있어졌다”고 말했다.
아이와 함께 마을에 정착한 부모들의 만족감도 크다. 7가구 모두 지난해 농촌유학생활을 1년 연장한 사실은 높은 만족감을 입증해 준다. 특히 한 달에 2번 실시되는 ‘전북 천리길 탐방’은 최고 인기다. 천리길 탐방 때문에 1년 연장을 결정한 학부모들도 있다. 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배려도 농촌유학 연장의 큰 이유가 됐다. 한 마을이 아닌 7개 마을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도 마을 주민들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됐다.
김혜숙 교장은 “유학생들이 자연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도록 생태학습에 집중하고 있다. 또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각종 현장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면서 “전북과 임실이 평생을 살아가면서 웃을 수 있는 ‘마음의 충족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지사초같이 인근에 큰 도시가 없는 시골학교의 경우 ‘가족체류형 농촌유학’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농촌유학마을 조성 등도 좋지만 유학생과 부모들이 마을 주민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북교육청에 따르면 올해 총 84명의 타시도 학생이 전북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첫 사업에 참여한 학생(27명)에 비해 3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유형별로 보면 가족체류형 37가구 66명, 유학센터형 18명이며 지역별로는 서울 75명, 그 외 지역 9명(경기·인천 등)이 전북 농촌학교로 전학을 왔다.
임경진 전북교육청 교육협력과장은 “농촌유학에 참여한 유학생은 물론이고 재학생, 학부모, 선생님 모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앞으로 지역의 특성을 살린 교육을 통해 학생들의 소질과 특기를 신장시키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성하 전북교육청 대변인은 “학령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소멸을 막기 위해서 작은학교 살리기가 반드시 필요하다. 서거석 교육감이 취임 직후 핵심 정책으로 농촌유학을 추진한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면서 “전북형 농촌유학는 물론이고 어울림 학교 등을 통해 소규모 학교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를 위해 지자체와의 유기적인 협력에도 적극 나설 예정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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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영영 사라져 없어지는 것. '소멸'이라는 말의 의미가 이토록 무섭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땅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입니다. 우리 옆의 이웃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가장 큰 숙제를 힘 모아 풀어나가야 할 때입니다. 그 현실과 고민을 함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