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자 처벌하라"…갑질 주장하며 숨진 장수농협 직원 유족들
조합원 총회 열린 9일 장수농협 앞에서 시위
- 이지선 기자
(장수=뉴스1) 이지선 기자 = "여러분, 고인이 편하게 눈을 감을 수 있도록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
9일 오전 전북 장수군 장수농협 앞. 마이크를 잡은 한 남성이 지나가는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지난달 직장 내 괴롭힘 끝에 숨진 고 이용문 장수농협 계장의 남동생이었다.
이 계장의 유가족과 지인 20여명은 이날 영하 6도까지 떨어진 추위에도 거리로 나섰다. 손에는 꽹과리와 북, 피켓이 들려있었다.
이들은 '죽음부른 직장갑질 은폐·공모 장수농협', '직장갑질 주동자 방관하는 장수농협 구속 수사하라' 등 내용이 적힌 피켓을 높이 들고 큰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다. 건물 앞에는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을 질타하고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내용의 현수막이 여러장 내걸렸다.
시위가 시작되자 농협 직원들과 고객들이 밖으로 나와 상황을 살펴보기도 했다. 조합장도 바깥으로 나와 이 계장 아버지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었다.
유족들은 "오늘 장수농협 임원진과 조합원, 대의원이 총회를 한다"며 "이 자리를 빌어서 아무것도 모르는 조합원들에게 간곡히 호소하고자 집회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건이 불거진 이후 아직까지 어떤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며 "썩은 부분을 도려내지 않으면 전체가 썩어들어갈 것"이라고 했다.
고 이용문 계장은 지난달 12일 '직장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신이 일하던 사무실 앞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 계장이 숨질 당시 신혼 3개월차였던 것으로 전해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유서 내용에 따르면 이 계장의 상사 A씨 등은 지난해 1월부터 1년여간 지속적으로 이 계장에게 비난이 섞인 말을 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계장은 괴롭힘으로 인한 고통을 호소하며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결국 참다 못한 이 계장이 직장 내 괴롭힘을 신고했다. 하지만 장수농협은 조사를 통해 A씨 등에게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과정에서 장수농협 측이 조사를 의뢰한 노무사가 A씨와 친분이 있었고, 증거가 들어있던 컴퓨터가 폐기처분 된 것으로 알려지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사건의 진상을 밝혀달라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전날인 8일 장수농협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고, 하드디스크와 휴대전화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도 특별근로감독팀을 꾸려 해당 농협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는 등 직장 내 괴롭힘이 있었는지 살펴보고 있다.
유가족은 "장수농협의 직장 내 괴롭힘, 횡령, 비리 등 아무것도 모르는 조합원 여러분과 장수군민들께 호소한다"며 "갑질로 인한 억울한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고 또다른 희생자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유가족들은 이날 농협 중앙회 측에 장수농협의 횡령 등 각종 비리 의혹과 관련한 내용의 서류들을 제출하고 감사를 요구한다는 계획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앱,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letswin7@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