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찾던 열아홉 딸은 어느덧 구순…'4·3희생자' 75년 만의 귀향
광주형무소서 숨진 故 양천종씨 유해 봉환
- 오현지 기자, 홍수영 기자
(제주=뉴스1) 오현지 홍수영 기자 = 70여년 전 광주형무소에서 눈을 감은 아버지는 당시 19세였던 딸이 구순을 훌쩍 넘겨서야 고향 제주로 돌아왔다.
제주 4·3 희생자 고(故) 양천종 씨 유해가 17일 친손자 양성홍 제주 4·3 행방불명인 유족협의회장의 품에 안겨 제주 땅으로 봉환됐다.
이날 오후 2시쯤 제주국제공항 1층 도착장 문이 열리고 양 회장과 함께 고인 유해가 담긴 함이 보이자, 휠체어를 탄 딸 양두영 씨(94)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75년 만에 유해로 돌아온 아버지를 두 손으로 받은 양 씨는 끝내 눈물을 터뜨리며 유해를 끌어안았다. 오영훈 제주지사의 위로 속에 양 씨는 "75년 만에 아버지가 돌아왔다"며 흐느꼈다.
양 씨 가족들은 고인의 유해를 품에 안고 고향 연동 밭터에서 그의 한을 위로하는 노제를 치렀다.
제주시 연동리 출신인 고인은 4·3 당시 집이 불에 타자 가족과 함께 노형리 골머리오름으로 피신했다.
그는 1949년 3월토벌대의 선무공작으로 주정공장에서 한 달여간 수용 생활을 하다 풀려났으나, 같은 해 7월 농사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다시 체포돼 광주형무소에 수감됐다.
고인이 가족에게 보낸 마지막 소식은 1949년 11월 부친 안부 편지였다. '형무소에서 잘 지내고 있다'는 내용의 편지 도착으로부터 한 달 뒤 가족들은 고인의 사망 통보를 받았다.
유족들은 고인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밭을 팔아가며 안간힘을 썼지만, 70여년간 유해를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19년 옛 광주교도소 무연분묘에서 신원미상 유해 261구가 발굴됐다. 제주도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 조사위원회로부터 받은 이들 유해 유전자(DNA) 정보를 4·3 희생자 유가족 DNA와 대조, 고인의 유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인은 이날 오후 제주 4·3평과 교육센터에서 진행된 유해 발굴 신원확인 보고회와 유해 봉안식을 통해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다.
도외 지역에서 발굴된 4·3 희생자 유해가 제주로 봉환된 것은 작년 북촌리 출신의 고 김한홍 씨에 이어 두 번째다.
흰 보자기에 싸인 유해함에 떨리는 손으로 '양천종' 세 글자가 적힌 이름표를 붙인 손자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기 바빴다.
양 회장을 비롯한 양 씨 손자들은 "할아버지를 찾아줘 감사하다"며 보고회 참석자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양 회장은 "할아버지 유해를 수습할 수 있어 기쁘다"며 "4·3으로 희생된 모든 행불 희생자가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 품에 안기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 회장은 할아버지와 마찬가지로 4·3 때 대전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행방불명된 아버지의 소식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이날 보고회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관계자들도 참석했다.
오 지사는 추도사를 통해 "75년이란 긴 세월 유가족들의 원통함은 감히 짐작조차 하기 힘들다"며 "정부와 유전자 정보를 긴밀히 공유하면서 4·3 수형인 기록이 남아 있는 지역에 대한 유해 발굴과 신원확인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oho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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