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금·대출금 바닥 난 '육지것' MZ사장의 제주 창업기

7080 콘셉트 주점 개업 후 공사 실패로 자본난 겪기도
"행정과 동네주민 도움으로 어려운 시기 이겨내"

7080을 콘셉트로 한 주점을 창업한 박민영씨가 가게를 둘러보고 있다/뉴스1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관광객도 관광객이지만 도민들이 편하게 와서 하루의 여정을 풀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제주를 찾는 MZ 세대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잡은 함덕해수욕장이 위치한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 해안가에서 조금 벗어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앙증맞다는 말이 어울리는 작은 돌하르방이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주점 '함돌'이 나온다.

안으로 들어서니 1970~80년대 경양식집에 떠오르는 인테리어가 눈에 먼저 들어왔다. 그때를 떠올리게 하는 아기자기한 소품들과 낡은 그래서 더 친근한 식탁과 의자가 방문객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들어준다.

올해로 개업 2년차인 함돌의 주인장은 98년생 27살 박민영 씨다. 제주에서는 타 지역 사람들을 '육지것'이라 부른다. 박씨는 3~4년 전 부모님과 제주로 이주한 '육지것'이다.

박씨는 "부모님이 자영업을 오래하셔서 그 영향을 받아 나도 창업을 하게 된 것 같다"며 "평소 술을 좋아해서 사람들이 편안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보자라는 생각으로 주점에 도전했다"고 말했다.

박씨가 주점 운영을 마음먹고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분위기'다.

박씨는 "공간과 인테리어로 차별화를 두고 싶었다. 보통 신장개업하는 가게는 깔끔함에 집중하는데 저는 예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싶었다. 가구나 인테리어뿐만 아니라 올드팝이나 7080가요를 틀어서 가게에 들어오면 과거에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했다.

◇시행착오로 자본난 등 위기…행정·주민들 도움받아

'맨땅에 헤딩'한다는 심경으로 도전한 그의 첫 창업은 녹록지만은 않았다.

테이블과 의자는 중고가구 가게를 돌며 발품을 팔아 구매했고 음식 맛에서도 뒤지면 안된다는 생각에 다른 가게에서 요리를 배우고 메뉴 개발에 힘을 쏟았다.

가장 큰 난관은 인테리어 공사였다.

박씨는 "자본금도 적고 대출도 어려워 최소한의 가격으로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했는데 공사가 끝나고 보니 바닥은 들뜨고 지붕에서는 물이 새더라"며 "화장실과 주방에도 계속 문제가 발생해 장사를 중단해야 하는 일이 잦았고 한여름에 에어컨마저 고장이 났다"고 토로했다.

가게가 자리도 잡기 전에 문을 닫아야 할 지경에 이른 박씨는 내부 시설 공사를 새롭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자본금과 대출금마저 모두 써버리고 막막하던 차에 제주도의 청년 지원 정책을 알게 됐다고 한다.

제주도의 '창업 두드림(Do Dream) 특별보증'은 담보력 부족 등 자금 사정이 어려운 도내 창업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보증 지원이다. 사업자 등록 후 3년 이내 청년창업기업을 대상으로 업체당 3000만원 이내(창업교육 이수 시 5000만원 이내)를 보증해주는 제도다. 2016년부터 올해 9월까지 8432건 2166억1900만원을 지원했다.

박씨는 "대출금을 마련한 순감 안도감이 들었다"며 "한번의 실패를 교훈 삼아 새롭게 공사를 했고 지금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다"고 했다.

박씨의 창업에는 행정의 도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육지것'을 향한 동네 주민들의 따뜻한 관심도 큰 역할을 했다.

20대 청년 창업가 박민영씨/뉴스1

박씨의 보물 1호인 '진동관 라디오'는 동네 어르신의 애장품이었다. 젊은 나이에 사업에 도전한 박씨를 위해 소정의 금액만 받고 선뜻 라디오를 주셨다고 한다. 가게의 예스러움을 풍기는데 일등공신이 된 이 라디오는 관리가 잘돼 있어 지금도 주파수를 맞추면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조용필, 유재하, 산울림 등 카세트테이프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가게 벽면에 걸린 제주 풍경 사진은 단골손님이기도 한 동네 사진관 주인에게 협찬을 받았다.

MZ 관광객뿐만 아니라 누구와도 언제든지 편하게 술 한잔 기울이며 두런두런 사는 얘기를 나누는 공간을 꿈꿨던 박씨의 소망이 점차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 고객 비중도 SNS를 타고 온 관광객이 절반 정도고 나머지는 동네 단골들이라고 한다.

창업 선배답게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을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는 "저는 너무 준비없이 다짜고짜 시작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며 "계획 단계부터 공간과 응대를 비롯해서 사소한 것까지 충분히 준비를 하고 도전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kdm@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