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종 '땡' 치자 농협으로…"까르르" 아이 웃음소리 가득한 이유

제주 한경농협, 전국 최초·유일 '어린이 방과후 교실' 운영
주말 돌봄 프로그램 기획까지…"마음 편히 농사일 하세요"

제주 한경농협 여성농업인센터 '어린이 방과후 교실' 현장.(한경농협 제공)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여우비가 내리던 12일 오후 2시 제주시 한경농협 여성농업인센터.

'어린이 방과후 학습실'이라는 글자 간판이 붙어 있는 이곳 안으로 아이들이 하나둘 달려오기 시작하더니 금새 '까르르' 터지는 웃음소리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소란스런 인사를 인사를 뒤로하고 아이들이 한데 모인 곳은 10평 남짓한 소회의실. 학교 급훈처럼 '스스로 즐겁게 재미있게'라는 문구의 현수막이 걸린 이곳에서 아이들은 전문강사의 지도 아래 자유롭게 방과 후 학습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선생님!"하고 외치며 달려가 궁금한 것을 물어보기도 하고, 친구들과 도란도란 토론 같은 대화를 하기도 하고, 책을 펴고 조용히 문제 풀이에 집중하는 아이까지. 저마다 모습은 조금씩 달랐지만 집중력 만큼은 한결같아 보였다.

추석을 앞두고 안부 인사차 들렀다던 학부모 김병섭씨는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더니 "농사일은 바쁘지, 주변엔 마땅한 학원 하나 없지, 아이들 돌봐 줄 사람은 없지… 정말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라면서 농협 직원들에게 거듭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제주 한경농협 여성농업인센터.(한경농협 제공)

2013년 3월 문을 연 한경농협 여성농업인센터는 개관과 동시에 바로 '어린이 방과후 교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교육비 절감, 도·농 교육격차 해소, 농촌 정착지원 등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늘 자녀교육이 걱정인 지역농업인들이 마음 편히 농사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바람이 컸다.

그 바람을 이어온 지도 햇수로 벌써 12년째. 전국 농협 최초이자 유일이라는 수식어도 그만큼의 세월을 거쳐 왔다.

12년 전과 마찬가지로 현재 어린이 방과후 교실은 월·화·수·목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 4시간 동안 진행되고 있다. 재능기부에 나선 전문강사가 신창초등학교 등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는 2~6학년 학생 20여 명을 대상으로 국어·수학·사회·과학 등 교과 관련 내용을 지도하는 식이다.

주말 오전에는 '꿈을 찾아 떠나는 제주역사문화탐방'이라는 이름의 체험활동도 운영된다. 고산지질공원, 아홉굿 의자마을, 옹기마을, 저지곶자왈 등 한경면 일대는 물론, 산방연대, 하멜기념관, 알뜨르 비행장, 항공우주박물관, 안전체험관 등 거의 안 가 본 곳이 없을 정도다.

지난해부터는 확장판 격인 '홈치(함께의 제주어)학교'도 운영 중이다. 지역 제한 없이 초등학생 2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주말 돌봄 프로그램을 기획한 것이다. 첫해에는 삼성꿈장학재단이 지원에 나섰고, 올해에는 김광수 제주도교육감이 노트북 15대를 기부하며 도움을 줬다.

그렇게 홈치학교 아이들은 매주 토요일 오전 동화구연, 역할극, 블록코딩, 공예, 동영상 제작, 플로깅 등 다양한 활동을 함께 하며 경험을 쌓고 있다. 학예회를 방불케 한 지난 7월 수료식 때는 오영훈 제주도지사와 김군진 한경농협 조합장이 함께 무대에 올라 특별한 추억도 선물했다.

7월 제주 한경농협 여성농업인센터에서 열린 홈치학교 수료식 '어린이들과의 동행'.(제주특별자치도 제공)

"엄마, 밭에서 일하느라 정말 힘드시죠. 탐방 갔다 왔는데 땀이 줄줄 나는 거 있죠? '엄마는 얼마나 땀이 많이 날까' 하는 생각이 났어요. 엄마, 일만 하지 말고 천천히 쉬면서 일했으면 좋겠어."

"탐방 갔다 오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아버지 일은… 어휴… 100배, 1000배 더 힘들죠? 저번에 일하다 힘줄도… 아구구… 아빠 힘내세요♥ 그리고 사랑해요♥"

"엄마, 이렇게 더운 날 저는 친구들과 탐방을 갔지만 엄마는 저희를 먹여 살리려고 열심히 일을 하시죠. 제가 열심히 공부해서 효도할게요. 엄마, 건강하고 오래오래 사세요."

지난해 한경농협 여성농업인센터 10주년을 맞아 발간된 '동행'에 담긴 아이들의 속마음이다.

한경농협 여성농업인센터장을 맡고 있는 오영순 사무장은 "언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아이들 때문에 힘이 들 때도 많고 매뉴얼이나 답이 없는 일이 생길까 늘 노심초사한다"면서도 "'그래도 이 일이 왜 좋을까' 생각해 보면 끊이지 않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아이들이 잘 성장해 농업·농촌을 위해 일하는 미래를 상상해 보곤 한다"며 "꿈을 꾸고 상상하면 이뤄지지 않겠나. 아이들에게 '분명 잘 될 거야'라는 말을 해 주고 싶다"고 미소지었다.

한경농협 여성농업인센터 개관을 이끌고 오늘날 든든한 지원자 역할을 하고 있는 박애자 상임이사는 "돌아보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었다. 시작할 땐 고생스러웠지만 지금은 이 보다 더 행복한 일이 없다"며 "힘 닿는 데까지 농업인들과 아이들을 지원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mro122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