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련 정상회담 요리 주문에 '조건' 내건 배짱 요리사
[맛있는 향토일]다금바리 장인 강창건
"다금바리로 日 참치 이기겠다"…생선 조리법 특허 획득
- 고동명 기자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1991년 어느날이었다. 강창건씨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정부 고위층의 전화였다. '서귀포 중문에서 아주 큰 행사가 있으니 당신이 다금바리 요리를 해줘야겠다'는 요청이었다.
큰 행사란 당시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한소 정상회담을 뜻했다. 놀라운 행사였고 당시만 해도 권위주의 정부 시절이었던만큼 말이 요청이지 강씨에겐 큰 압박일 수 있었다.
무릎을 꿇고 수화기를 들고 있어도 모자랄판에 강씨는 제안을 받아들이며 몇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음식 재료를 자신이 준비해야 하고 갖가지 요리 도구와 조수 역시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것이었다. 요리를 할때 넥타이를 매지 않고 평소 입던 복장을 입고 하겠다고까지 했다.
훗날 아니 이미 그 당시 다금바리 요리로 전국에 명성을 떨쳤던 강씨의 배포와 위상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어부의 아들로 태어난 강씨는 야간에 고등학교를 다니며 학업의 꿈을 이어갔다. 아버지도 강씨가 공부를 더 하기를 원해 배에 타지 못하게 했다. 결국 바다와 관련된 직업으로 대성공을 거뒀으니 어부의 피를 속이지는 못한 듯하다.
1980년대 초 목수로 생계를 유지하던 강씨는 결혼하고 얼마 안돼 해녀인 아내가 크게 다치는 아픔을 겪는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아내를 집에 혼자 놔둘 수 없던 강씨는 고향인 안덕면 사계리에 있는 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가게에 식당을 열면서 제2의 인생이 시작된다. 이 식당이 현재도 같은 자리에 위치한 '진미식당'이다.
강씨는 "아르바이트생으로 드나들던 고급요정과 횟집 등에서 주방장의 칼질법과 작업 방식을 몰래 익힌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과거에는 큰 며느리가 아들을 낳아야 다금바리를 끓여 먹인다는 말이 있을만큼 다금바리는 귀한 보양식이었고 현재도 횟감의 대명사로 불린다.
강씨가 다금바리에 인생을 걸게 된 계기는 고 이규태 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음식 강연이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참치의 다양한 부위로 회뿐만 아니라 수십가지의 요리를 만든다는 얘기를 들은 강씨는 "다금바리로 참치의 명성을 이기겠다"고 결심한다.
다금바리만 파고든지 17년여만인 2006년 그는 국내는 물론 세계에서는 처음으로 다금바리 관련 특허를 획득한다. '다금바리 회 조성물 및 제조방법'이라는 특허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 다금바리의 각종 부위를 조리하는 방법과 강씨의 회치기 비법 등이 특허를 받아냈다.
강씨는 "나의 조리법을 삼성전자 같은 브랜드로 만들고 싶었다. 다금바리의 단단한 힘줄이 치아에 끼지 않게 써는 법부터 비린내와 잡내 잡는 법 등도 특허에 담겼다"며 "생각해보면 젊은 시절 목수를 했던 경험이 회치기에 도움이 됐다"고 웃었다.
그는 옛 중국의 유명한 요리사 '포정'이 소고기의 살과 뼈를 정확하게 도려내 칼날이 무뎌지지 않았다는 일화를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 그 역시 팬케이크 칼을 포함해 다양한 종류의 칼을 회치기에 사용하지만 숫돌에 칼을 가는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특허 획득 이후 강창건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는 급격히 올라갔다.
앞서 얘기한 한소 정당회담을 비롯해 백담사에서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전두환 전 대통령, 2000년 9월 남북 국방장관 회담, 북한 최고위급 탈북자인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 등 그의 다금바리 요리를 거쳐간 유명인들은 셀수 없을 정도다.
2006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열린 슬로푸드 세계본부 주최 '세계 음식의 향연'에 우리나라 대표로 참석해 현지 언론과 미식가들의 호평을 이끌었고 롯데호텔 등 국내 정상급 호텔들이 그의 이름을 내건 갈라쇼를 수차례에 걸쳐 열었다.
2019년에는 제주도가 지정하는 향토음식 장인으로 지정됐다. 향토음식육성위원회는 "다금바리와 관련 수년에 걸친 노하우와 생선 특유의 비린내를 제거하는 소스 개발 등은 물론 국내외 대회(행사)에 참여하여 알리는 노력 등이 인정된다"고 장인 지정 이유를 밝혔다.
강씨는 "향토음식하면 서민음식만 떠올리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향토음식업계에도 '3고(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바로 고품격 고객, 고급 메뉴, 고단가 이렇게 3가지"라며 "결국 음식맛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기 마련이다. 정직하게 좋은 음식을 만드들면 손님이 알아주기 마련"이라고 했다.
#이 기사는 제주도와 제주관광공사의 지원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kdm@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
편집자주 ...지역마다 특색이 담긴 향토음식과 전통 식문화가 있다. 뉴스1제주본부는 토요일마다 도가 지정한 향토음식점과 향토음식의 명맥을 잇는 명인과 장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향토일(鄕土日)이라는 문패는 토요일마다 향토음식점을 소개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