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간첩단 사건 재판부 "공소사실 애매"…검찰에 석명권 행사

검찰, 공소사실 입장 서면 제출 예정…3차 공판은 4월
피고 측 주장하는 '공판준비기일 재개' 가능성 낮을 듯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 ⓒ News1 오미란 기자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홍은표 부장판사)는 26일 국가보안법 위반(간첩 등) 등의 혐의로 기소된 강은주 전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55·여)과 고창건 전 전국농민회총연맹 사무총장(54), 박현우 전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49)에 대한 2차 공판에서 제주지방검찰청에 석명권을 행사했다.

형사소송규칙상 석명권은 소송관계를 명료하게 하기 위해 재판장이 검사나 피고인, 변호인에게 사실상·법률상의 사항에 관해 설명하도록 하거나 입증을 촉구할 수 있는 권한을 말한다.

재판부는 피고 측이 지난달 28일 제출한 '구석명(석명을 구함) 신청서'의 내용이 이유 있다고 판단해 이 같이 결정하고, 검찰에 이른 시일 안에 법률적 주장을 담은 서면을 제출하도록 했다.

구석명 신청서 주요 내용을 보면 먼저 피고 측은 강 전 위원장이 북한 지령에 따라 진보당 제주도당 당원 수 등을 북한에 보고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해 "진보당은 9만5000번째 당원의 실명과 얼굴을 자랑스럽게 공개한 바 있다"면서 "인터넷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당원 수가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지 소명돼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피고 측은 이 뿐 아니라 검찰의 공소사실 대로 강 전 위원장이 실제 북한의 지령을 받았는지, 고 전 사무총장과 박 전 위원장의 정부 비판 발언이 실제 북한 지령에 따른 것인지 등도 공소장에 명확히 특정돼 있지 않다는 주장도 폈다.

이 밖에도 이들은 "검찰이 공소를 제기한 부분으로 인해 대체 어떤 위험이 발생했는지에 대한 내용 역시 아무것도 없다"며 거듭 석명권 행사를 요청했었다.

이날 공판은 검사의 기소요지 낭독까지 진행됐다. 재판부는 4월1일 오후 2시 진행되는 3차 공판 때 피고인들의 공소사실 인부와 쟁점 정리 등의 절차를 진행하기로 했다.

재판부는 피고 측이 절차적 하자를 이유로 계속 요청하고 있는 공판준비절차 재개 여부에 대해서도 2차 공판 때 결정하기로 했다. 다만 재개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재판부는 이날 공판에서 "공판준비기일은 말그대로 공판을 준비하는 절차"라며 "그 절차를 하지 않더라도 위법 또는 피고인 방어권 침해가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국가정보원이 지난 2022년 11월9일 오후 제주시에 있는 강은주 전 진보당 제주도당위원장의 자택 앞에서 강 전 위원장의 차량을 압수수색하고 있다.2022.11.9/뉴스1 ⓒ News1 오미란 기자

한편 이 사건 피고인 3명은 북한으로부터 하달받은 조직 결성 지침과 조직 강령·규약 등을 토대로 제주에서 이적단체 'ㅎㄱㅎ'를 구성·운영한 혐의를 받고 있다. 당초 'ㅎㄱㅎ'는 조국통일의 한길을 가겠다는 뜻의 '한길회'의 초성으로 추정됐으나 '한길회는 'ㅎㄱㅎ'의 노동 부문 하위조직 이름일 뿐 현재 'ㅎㄱㅎ' 자체는 보안을 위한 약정음어인 것으로 파악됐다.

공소사실에 따르면 강 전 위원장이 총책을 맡은 'ㅎㄱㅎ'는 고 전 사무총장이 책임자인 노동 부문 조직과 박 전 위원장이 책임자인 농민 부문 조직, 강 전 위원장이 직접 관리한 여성농민·청년·학생 부문 조직 등 크게 3개 하위조직을 뒀다. 구성원 수는 총 10여 명이다.

그렇게 'ㅎㄱㅎ'는 북한이 제공한 암호 프로그램(스테가노그라피·Steganograpy)으로 만든 문서를 클라우드에 올려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보당 제주도당 당원 수 등 현황과 사상학습 실적, 노동·농민부문 정세, 반미국·반정부 집회 활동 등을 북한에 보고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밖에 강 전 위원장의 경우 2022년 3월부터 6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북한 대남공작원 활동을 찬양하고, 같은 해 2월부터 11월까지 북한의 대남공작전략에 이익이 되는 민주노총 투쟁 일정과 이적단체 후원회 명단 등을 북한에 보고한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mro122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