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영물' 노루, 포획 금지 이후에도 수난사 계속
겨울철 먹이 찾으러 다니다 교통사고·로드킬 잇따라
야생화된 들개도 '위협' 요인… 4800여마리 서식 중
- 고동명 기자
(제주=뉴스1) 고동명 기자 = "아휴, 어쩌다 저랬을까."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에 위치한 제주자연생태공원, 한 쪽 앞다리를 잃은 암컷 노루 1마리가 세 다리로만 껑충껑충 몇 발자국 뛰다가 이내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를 지켜보던 관람객들로부턴 안타까움의 탄성이 절로 나왔다.
9일 제주자연생태공원에 따르면 이 노루는 7~8년 전 교통사고로 오른쪽 앞다리를 절단하는 큰 수술을 받은 뒤 2017년 공원 개관 때 이곳으로 옮겨졌다. 야생동물에게 이 정도 큰 부상은 '사망선고'나 다름없다. 만약 제때 구조되지 않았더라면 이 노루는 차디찬 도로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았을 가능성이 크다.
자연생태공원 관계자는 해당 노루에 대해 "다리 말곤 건강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상태이긴 하지만 야생에서 스스로 먹이활동을 하는 게 불가능하고 다른 노루 무리와도 어울리기 힘들기 때문에 공원에서 보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생태공원 주변엔 30여마리의 노루가 서식하고 있다. 공원 측이 제공하는 먹이를 먹기 위해서다. 공원이 위치한 궁대오름 전역엔 약 150마리의 야생 노루가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23년 기준으로 제주에 서식하는 노루는 약 4800마리로 전년보다 500마리(11.6%) 증가했다. 그러나 적정 개체 수 6100마리엔 여전히 미치지 못하고 있다.
한라산의 '영물'로 불리던 노루는 지난 1980년대 후반 멸종위기에 놓였다가 보호운동 등에 힘입어 2009년 1만2800여마리까지 늘었다.
그러나 개체 수가 급증한 노루가 농가의 농작물까지 먹어치운다는 등의 불만이 제기돼 제주도는 2013년 7월 노루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 총기류 등을 이용해 잡을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제주도의 노루 개체 수는 2018년 3900마리 수준까지 감소했고, 이에 제주도는 2019년 7월 노루를 유해야생동물에서 해제, 현재는 총기 포획을 금지하는 등 개체 수 관리에 나선 상태다.
전문가들은 제주도의 노루 개체 수 증가가 더딘 요인으로 △야생 들개와 △서식 공간 감소 △꽃사슴과의 경쟁과 더불어 △'로드킬'을 꼽고 있다.
제주도세계유산본부가 2018년 발표한 '제주노루 행동생태관리' 보고서를 보면 한라산국립공원 지역 1100도로와 516도로 등에서 2010년부터 2018년 9월까지 로드킬로 희생된 노루는 2796마리에 이른다.
로드킬 등 사고로 죽은 노루는 제주도의 위탁을 받아 야생생물관리협회 제주도지부에서 처리한다.
사고를 당한 뒤에도 살아 있는 노루는 제주대 야생동물구조센터가 구조한 뒤 치료해서 야생으로 돌려보내지면, 홀로 살아남기 어려울 만큼 장애가 있을 땐 사람의 보살핌을 받게 된다.
현재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선 작년에 교통사고로 앞다리 하나를 잃은 암컷 노루를 보호 중이다.
센터 관계자는 "작년에만 180여마리의 노루를 구조했다"며 "노루들이 겨울철이 되면 먹이를 찾으려고 이동이 잦아져 로드킬 또는 교통사고로 다치는 사례가 많아진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야생생물관리협회 제주도지부 관계자는 "사체를 처리한 노루 중 10~15%는 들개에 물려 죽은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제주자연생태공원에선 현재 노루 외에도 부상을 입어 야생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동물 다수를 보호하고 있다. 황조롱이, 말똥가리, 매, 수리부엉이 등 조류가 18종류 42개체로서 거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최근엔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329호인 반달가슴곰 4마리가 경기도에서 자연생태공원으로 이송됐다.
kd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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