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방애'를 아시나요? 존폐 몰린 '제주들불축제'의 미래는
방목지 불 놓는 '방애' 문화 재해석해 1997년 시작
악기상·산불 맞물리며 폐지론 고개…제주시 결정은?
- 오미란 기자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옛 제주에는 '방애'라는 문화가 있었다.
새봄이 찾아올 무렵 가축에게 먹이기 좋은 풀이 잘 돋아나도록 방목지에 불을 놓는 것이다.
이 방애 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현한 것이 바로 '제주들불축제'다.
제주시 주최로 1997년 시작된 이 축제는 애월읍 어음리(제1·2회), 구좌읍 덕천리(제3회)를 거쳐 2000년 제4회 때부터 애월읍 봉성리 새별오름 일대에서 해마다 열리고 있다.
축제의 백미는 '오름 불 놓기'다.
탐라국 개국신화가 깃든 삼성혈에서 채화해 온 불씨를 면적 52만㎡의 새별오름에 놓는 행사인데, 커다란 오름을 따라 일렁이는 붉은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축제는 그렇게 매년 30만 명을 끌어모으면서 우리나라 대표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지역육성축제(2001년)·유망축제(2006년)·우수축제(2015년)·최우수축제(2019년)·문화관광축제(2020~2013년), 대한민국축제콘텐츠대상 축제관광부문 대상(2016~2018·2000·2022년), 문체부·관광공사 선정 K-컬쳐 관광 이벤트 100선 등이 이를 증명한다.
그러나 부침도 많았다.
대체로 시기가 문제였다.
매년 정월대보름(음력 1월15일)에 맞춰 열리던 축제는 2013년부터 경칩을 낀 주말에 열렸다. '정월대보름들불축제'에서 '제주들불축제'로 축제 명칭이 바뀌게 된 것도 이 때부터다.
정원대보름 때마다 겨울철 늦추위가 기승을 부리면서 불놓기 행사가 연기 또는 취소되는 등 차질이 반복됐던 데다 방애 문화 자체가 정월대보름 보다는 경칩과 시기적으로 더 가깝다는 향토사학계의 의견이 반영된 데 따른 변화였다.
최근에는 대형 산불 시기와 맞물리면서 존폐 논란까지 불거졌다.
제주들불축제는 지난해 동해안 산불 여파로 취소된 데 이어 올해는 전국 산불 관련 산림청과의 미흡한 사전 협의로 개막 2시간 만에 불과 관련된 모든 행사가 취소되는 등 2년 연속 큰 차질을 빚었다.
이에 그간 지속적으로 환경 파괴 문제를 우려해 온 환경단체가 축제 폐지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여기에 강병삼 제주시장과 오영훈 제주도지사도 잇따라 의견 수렴 절차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도는 제주녹색당 등 도민 749명이 숙의형 정책개발을 청구함에 따라 지난 5월19일 심의를 거쳐 원탁회의 방식으로 축제 존폐 여부를 가리기로 결정했다.
총 187명(정원 200명·불참 13명)으로 구성된 원탁회의 도민 참여단이 지난달 19일 5시간에 걸친 토론 후 전자투표를 한 결과는 '유지'에 무게가 쏠렸다. 응답자의 50.8%(95명)은 '유지해야 한다'고 답했고, 41.2%(77명)는 '폐지해야 한다', 8.0%(15명)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제주들불축제 숙의형 원탁회의 운영위원회는 축제 주최 측인 시에 해당 전자투표 결과를 담은 권고안을 제출하면서 '축제의 재탄생'을 주문했다.
운영위는 권고안에서 "도민 참여단의 최종 숙의 결과는 오름불놓기가 테마인 제주들불축제는 생태적 가치를 중심으로 도민 참여에 기반을 둔 시민이 함께하는 축제로 재탄생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기후위기 시대, 도민·관광객 탄소 배출, 산불, 생명체 훼손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대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시는 제출된 권고안을 바탕으로 도민 참여단 토론 내용, 절차적 사항 이행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다음달 중 축제 존폐 여부를 최종 확정해 발표하기로 했다.
일찍이 강 시장이 지난 8월23일 시정 브리핑에서 "이 문제는 그야말로 가치판단"이라며 "원탁회의의 결정과 다른 결정을 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힌 만큼 사실상 축제는 유지하되 개선하는 선에서 결론이 내려질 것으로 보인다.
mro12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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