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옥살이한 큰아버지…" 제주시장이 4·3 재심 법정 선 사연
군사재판 수형인 30명 검찰 직권재심 청구사건 공판
제주지법, 전원 무죄 판결…"희생자 영혼 안식하길"
- 오미란 기자
(제주=뉴스1) 오미란 기자 = 세찬 소나기가 내리던 29일 오후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
제주4·3 당시 불법 군법회의에 넘겨져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희생자 30명에 대한 검찰 직권재심 사건 공판이 열린 이 곳 피고인석에는 제주4·3 희생자 고(故) 강재현씨를 대신해 강병삼 제주시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 시장의 큰아버지인 고인은 제주시 애월읍 상귀리에서 어머니와 아내, 남동생, 여동생과 함께 농사를 짓고 살던 평범한 청년이었다.
시련은 그가 21살 때였던 1949년 3월 예고 없이 찾아 왔다.
제주4·3이 발발하면서 동네에 소개령(주민 분산 명령)이 내려지자 옆 동네 임시 거처로 가족을 피신시킨 고인이 끝까지 홀로 집을 지키다가 끝내 경찰에 끌려갔다·.
이 과정에서 고인은 국방경비법 위반죄라는 누명을 썼고 그 해 7월 제2차 군법회의에 넘겨져 무기징역을 선고받기에 이르렀다. 이후 고인은 서울 마포형무소 수감 중 6·25전쟁 과정에서 행방불명됐다.
검찰은 이날 공판에서 재판부를 향해 "아무런 죄가 없음에도 불법 수사·기소·재판·선고에 의해 처벌받은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해 달라"면서 "가족을 잃고도 수 십년 동안 말 못할 고통 속에 희생자들을 가슴에 묻고 통한의 세월을 보낸 유족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지난해 8월 담당 변호사였던 강 시장의 시장 취임으로 대신 변호를 맡게 된 반희성 변호인도 이 자리에서 "이 사건 희생자들은 공소사실과 같은 죄를 저지른 적 없는 억울한 사람들"이라며 "무죄 선고로 75년 세월을 보내 온 유족들의 아픔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맏형과 함께 재판에 참석한 강 시장은 재판부로부터 발언 기회를 얻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유독 많이 나는 날"이라며 "아버지께서는 2012년 제가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자 '숙제가 하나 있었다'며 큰아버지의 비석을 세우시더니 그 해 돌아가셨다"고 했다.
강 시장은 "우리 형제는 그 말을 아버지의 유언으로 삼아 오늘도 큰아버지를 아버지처럼 모시고 있다"며 "올해 아버지 제사 때는 큰아버지의 무죄 판결문을 올려 드리고 싶다"고 눈물을 훔쳤다.
재판부는 고인을 비롯한 희생자 30명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과 변호인의 주장 대로 내란죄 등을 저질렀다는 증거가 없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형언할 수 없는 고초 끝에 가족과 단절된 채 억울하게 망인이 된 피고인들의 영혼이 안식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mro122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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