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집중호우에 장마까지…메밀밭 갈아엎은 농민 "앞이 캄캄"
"기후변화에 봄농사 줄줄이 차질…대책 마련해야"
- 오현지 기자
(서귀포=뉴스1) 오현지 기자 = 장맛비가 소강상태에 접어든 5일 오전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의 한 밭에 수확 시기가 한참 지난 거뭇거뭇한 메밀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었다.
수확 전 성인 허벅지에서 골반 높이까지 올라왔어야 할 메밀은 무릎에도 채 닿지 않는 상태였다.
이곳은 수확 전 메밀 이삭에서 새싹이 돋는 '수발아' 피해를 입은 농가다.
수발아한 농작물은 식용은 물론 종자용으로도 부적합해 사실상 수매가 불가능하다. 밭을 갈아엎는 수밖에 없는 셈이다.
또 대부분 농가가 메밀을 수확하고 바로 콩을 파종해야 하지만 수확에 실패하며 2모작 농사까지 줄줄이 차질을 빚고 있다.
제주도는 봄 메밀 재배 면적 900㏊ 가운데 3분의 1 가량인 300㏊에서 수발아 현상 등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농민들은 봄철 이상저온과 폭우, 장마까지 이어지는 '기후위기'에서 원인을 찾고 있다.
실제로 6월 말 수확 전 메밀이 가장 크게 성장해야 할 지난 5월 제주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비가 내렸다. 5월에만 408.1㎜의 비가 쏟아지면서 5월 기준 제주도 역대 1위 강수량 기록이 경신됐다.
메밀밭 주인 이모씨는 "올 봄에 비가 너무 많이 내리고, 안개까지 수시로 끼면서 메밀이 햇빛을 잘 보지 못했다"며 "최근에 장마까지 시작되면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수발아 현상이 나타나며 결국 밭을 갈아엎게 됐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봄메밀은 보험 적용도 안 돼 앞으로 고금리 대출 이자와 비료값을 어떻게 충당할 지 앞이 캄캄하다"며 "기후위기가 오늘내일 만의 일이 아니고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기 때문에 도정에서 피해 구제 대책과 제도를 마련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주도연맹은 이곳 메밀밭에서 기후위기 농업 피해 구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트랙터 7대를 이용해 밭을 갈아엎었다.
연맹은 "모든 어려움은 예측 가능하고, 헤쳐 나갈 수 있으나 기후위기로 인한 재해는 손 쓸 방법이 없다"며 "몇 년 전까지는 태풍만 버티면 된다고 생각했고, 작년에는 겨울 한파로 월동채소를 전부 갈아엎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상기후로 인해 생육이 더뎌져 제주 주요 봄작물을 줄줄이 갈아엎고 있다"고 피력했다.
이어 "이 상황에 제주도정과 정부는 어떤 대책을 내놓고 있는가. 비료값과 농자재 가격 등 물가가 상승하는 와중에 농업예산은 3%에 머물고 있다"며 "농정당국은 기후위기로 인한 농업의 위기를 타개할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oho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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