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만에 시민 품…부평 캠프마켓, 환경·역사 갈등 '어쩌나'[결산 2023]

일제, 만주·중국 보낼 무기 생산·미군, 군사시설로 활용
올해 44만㎡ 온전히 반환…공원·식물원·제2의료원 조성

캠프마켓 전경.(인천시 제공) ⓒ News1 강남주 기자

(인천=뉴스1) 박소영 기자 = 인천 부평구 캠프마켓이 84년 만에 인천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캠프마켓은 1939년 일제가 무기공장인 ‘육군조병창’으로 조성한 이후 84년 넘게 시민의 발길이 닿을 수 없었던 금단의 땅이었다.

캠프마켓을 올해 온전히 되찾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바로 환경·역사 갈등이다.

24일 인천시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20일 캠프마켓 D구역 반환을 공식 발표했다. 반환부지는 미군의 제빵공장·창고부지로 약 25.7만㎡다. 이로써 2019년 12월 첫 반환된 A·B구역을 포함해 캠프마켓 44만㎡가 전부 반환됐다. 축구장(2만678㎡) 21개 크기의 면적이다.

1937년에 시작된 중일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일본은 이곳에 만주와 중국 일대로 보낼 병기를 신속히 생산할 목적으로 한반도 내 유일한 조병창을 건립했다.

조병창에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1만명 넘고, 그중 학생들은 1000여명에 달한다고 알려져 있다. 이들은 무기생산 목표량에 따라 무기를 만들었다. 일제의 침략전쟁과 강제동원에 반대하는 조선인들은 이곳에서 태업을 하고 무기를 빼내 임시정부에 전달하는 등 민족해방운동을 벌였다고 알려졌다.

1945년부터 1973년까지 인천 부평구에 있던 미군기지(애스컴시티) 모습.(부평역사문화박물관 제공)2023.12.22 ⓒ News1 박소영 기자

◇조병창 해산되니 미군 ‘애스컴시티’로

1945년 8월 광복과 동시에 조병창은 해산됐다. 그러나 미국이 남한에 주둔한 미군의 물자와 식량보급을 위해 조병창 부지 일대에 주한미육군병참본부인 ‘애스컴시티’(캠프마켓 포함 7개 군사 도시)를 조성하면서 금단의 역사는 이어졌다.

애스컴시티 내 대부분의 미군기지는 평택, 왜관, 김천으로 이전하게 됐고, 1973년 6월 애스컴시티는 공식 해체돼 캠프마켓만이 남게 됐다.

애초 애스컴시티 내에는 군사시설과 함께 식당, 클럽, 피엑스(PX), 병원, 도서관, 극장, 체육관, 교회 등의 편의시설이 있었다. 그러나 캠프마켓으로 축소되면서 헌병대와 통신대, 제빵공장 등 일부만 남아 운영됐다. 제빵공장은 2021년 8월31일 가동을 중단하고 평택 미군기지로 이전했다.

2011년 인천 부평구 미군기지 캠프마켓을 반환해달라고 요구하는 시민들이 경찰과 대치하고 있다.(인천평화복지연대 제공).2023.12.22 ⓒ News1 박소영 기자

◇캠프마켓 반환 이끈 시민운동…‘인간띠 잇기’도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캠프마켓 반환을 요구하는 시민운동이 시작됐다. 1996년에는 인천지역 시민단체들과 시민 4000여명은 4.6㎞의 미군부대를 둘러싸는 ‘인간 띠 잇기’ 행사를 펼쳤다. 또 1인 시위, 단식농성, 서명운동도 함께 진행했다.

2012년 ‘부평미군기지 시민참여위원회’가 발족됐고, 캠프마켓 조기반환과 오염토양정화 활용방안 모색을 위한 활동을 아직까지 지속하고 있다.

결국 캠프마켓은 2002년 3월28일 한미연합토지관리계획(LPP)에 의해 반환이 결정됐다.

2019년 12월 캠프마켓 A·B구역이 우선 반환됐고, 2021년 5월에는 반환된 구역 중 B구역 운동장부지가 개방됐다.

그간 잔여지 구역 반환이 지연되다가 정부는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장 간 협의를 통해 캠프마켓 잔여구역(D구역) 반환에 합의했다. 이로써 캠프마켓 전체구역 반환이 끝났다.

유정복 인천시장은 최근 기자회견을 통해 "캠프마켓이 84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인천의 품으로 완전히 돌아왔다"며 "민선8기 공약과 같이 캠프마켓은 긴 단절의 역사를 극복하고 우리 모두를 위한 열린 공간으로 조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 부평구 미군기지 캠프마켓 B구역 내에 있는 일제 조병창 병원건물.(인천시 제공)2023.12.22 ⓒ News1 박소영 기자

◇끝나지 않은 진통…‘환경·역사’ 갈등 첨예

캠프마켓이 완전 반환됐지만 진통은 끊이지 않고 있다. 캠프마켓을 둘러싼 갈등은 크게 환경과 역사 문제로 나뉜다.

캠프마켓의 토양오염 정도와 정화비용은 공개돼 있지 않다. 다만 이미 반환된 A·B·C구역 정화비용만 1000억원 이상 소요된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의 환경단체들은 캠프마켓의 토양오염 정도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정화비용을 오염원인자인 미군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천녹색연합은 2022년 12월 말, 환경부에 D구역 환경조사보고서를 정보공개 청구했으나 비공개해 결국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지난달 21일 서울행정법원은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해 조만간 환경조사보고서가 공개될 예정이다.

역사단체에서는 일제침략과 강제동원의 상징인 캠프마켓의 일부 건물을 존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 캠프마켓 내 건물들의 역사적 가치들을 완전히 조사 후 철거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특히 B구역 내에 있는 조병창 병원 건물은 2021년 6월부터 2년 넘게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 건물은 조병창에서 강제동원돼 무기를 만들다 다친 노동자들이 치료받던 곳이다.

인천시는 이 건물 하부 유류오염이 심각하다며 철거를 결정했는데,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일부를 존치하기로 입장을 선회했다.

현재는 ‘일본육군조병창 역사문화생태공원 추진협의회’가 제기한 조병창 병원 건물 해체 중단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이 인용해 철거 공사를 멈춘 상태다.

지난 11월 인천 부평구 미군기지 캠프마켓 B구역 조병창 병원건물 인근에서 지하시설물이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현재 이 지하시설이 '땅굴'인지 조사를 하고 있다.2023.12.22 ⓒ News1 박소영 기자

◇부평 지역에 퍼져있는 땅굴…실체 규명될까

그동안 캠프마켓 외부에선 ‘땅굴’이 여럿 발견됐다. 부평지역에서 ‘땅굴’로 추정되는 지하시설은 6개 지점에 50여개가 발견됐다고 전해진다. 산곡동 화랑농장 일대와 3보급단 일대에서도 지하시설이 발견됐다.

또 앞서 B구역 내에 있는 조병창 건물을 철거하던 중 인근 가로×세로 약 1~1.5미터 정사각형 모양 지하시설이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지하시설이 일제가 만든 무기를 검사한 장소인 ‘땅굴’인지 조사하고 있다.

인천시는 지난해 지하시설 발굴조사에 착수했지만, 현재까지 실체 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육군 조병창에서 동원됐던 사람들의 구술을 집필한 ‘일제의 강제동원과 인천육군조병창 사람들’을 보면 조병창 내 공장에서 총을 만들면 지하벙커에서 성능을 시험했고 땅굴에 보관했다고 나와 있다. 또 조병창 내에 있는 땅굴은 미군의 공습을 피하는 방공호 역할도 했다고 적혀있다.

20일 인천시청 브리핑룸에서 열린 부평 캠프마켓 반환 관련 기자브리핑에서 유정복 시장이 캠프마켓 개발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인천시 제공)2023.12.22 ⓒ News1 박소영 기자

◇반환된 땅에 ‘공원·식물원·제2의료원’ 조성

인천시는 반환받은 캠프마켓에 공원과 식물원, 제2인천의료원을 조성할 예정이다. 예상 사업비는 1조5000억~2조원으로 추정된다.

공원의 경우 캠프마켓 부지를 포함해 제3보급단, 부평공원을 합해 110만㎡ 면적에 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2026년 착공, 2030년 준공할 계획이다.

식물원은 실내 1만㎡, 실외 1만~2만㎡ 규모로 지어진다. 식물전시·관람 외에도 교육체험 프로그램 등 다양한 콘텐츠를 도입하고 휴식, 산책, 자연감상을 할 수 있는 생태문화 복합공간으로 조성한다.

제2인천의료원은 A구역 내 4만㎡ 부지에 연면적 7만4863㎡ 규모로 건립한다. 2026년 착공, 2029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할 계획이다.

이광호 인천평화복지연대 사무처장은 “반환 구역 내에 있는 시설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활용을 위한 사회적 합의와 논의가 필요하다”며 “시민들의 충분한 숙의와 합의 과정을 거쳐 미래세대를 위한 곳이 될 수 있게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imsoyoung@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