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당할라"…정당현수막 강제 철거 몸 사리는 공무원들
- 강남주 기자
(인천=뉴스1) 강남주 기자 = 인천시가 전국 최초로 무분별한 정당현수막에 대한 강제 철거를 시작했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강제 철거가 위법 논란에 휩싸이면서 단속해야 할 군·구가 몸을 사리고 있어서다.
17일 인천시에 따르면 조례 위반 정당현수막 강제 철거가 시작된 지난 12일부터 이날까지 총 176개를 철거했다.
연수구가 75개로 가장 많았고 부평구 63개, 남동구 17개, 서구 12개, 중구 5개, 미추홀구 4개 등이다. 총 10개 군·구 중 6개 구가 참여했고 2개 군, 2개 구는 참여하지 않았다.
철거한 정당현수막은 총 572개 중 약 31%에 그치는 것이다. 또 정당과 협의하에 진행된 철거가 상당수 차지해 강제 철거 건수는 이보다 훨씬 적다.
이처럼 군·구의 강제 철거 참여가 미진한 건 단속공무원들이 민·형사상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정당현수막 강제 철거는 ‘인천시 옥외광고물 조례’가 근거다. 이 조례는 정당현수막을 지정게시대에만 게시하고 그 개수를 국회의원 선거구별 4개 이하만 허용한다는 게 골자다. 또 현수막에 혐오·비방 내용을 담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법은 정당현수막의 경우 별도의 신고나 허가가 필요 없고 크기·형태·장소 제한도 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시내 곳곳에 무분별하게 정당현수막을 걸더라고 옥외광고물법상으론 불법이 아닌데 인천시 조례는 불법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단속공무원들 사이에선 정당현수막을 강제 철거할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당이 단속공무원들을 상대로 민·형사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는 걱정이다. 실제로 일부 정당에선 구에 전화해 단속공무원을 고발하겠다고 말하기도 해 단속공무원들이 더욱 위축돼 있다,
인천시가 ‘적극행정 면책’을 약속해 주지 않는 것도 단속공무원들이 몸을 사리는 이유다. 적극행정 면책제도는 공무원이 성실하고 능동적 업무처리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에 대해 공익성·투명성·타당성이 인정되는 경우 그 책임을 감경해 주는 제도다.
군·구는 이밖에 강제 철거 현장에서 몸싸움이 벌어졌을 때 단속공무원들을 보호할 대책이 없다는 점과 지정게시대가 부족한 점도 강제 철거에 소극적인 이유라고 설명했다.
A구 관계자는 “우리 구는 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정당현수막을 강제 철거하다가 공무원이 신변상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아직 강제 철거를 시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B구 관계자도 “현재 정당과 협의한 현수막만 철거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천시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현재까지 인천시 조례는 위법 판정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유효한 것”이라며 “조례를 위반한 현수막 철거는 정당하다”고 했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인천시 조례를 통과시킨 인천시의회를 상대로 조례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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