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서 무릎 꿇은 아리셀 유족들 "엄벌해 달라"…눈물 '호소'
아리셀 연구소장 아내 "빨리 합의하면 5000만 원 더, 합의 종용"
유족 8명 "아직도 참담한 현실에 갇혀 살아" 법정 진술
- 김기현 기자
(수원=뉴스1) 김기현 기자 = 대형 화재로 사망한 리튬전지 제조공장 아리셀 근로자 23명 유족들이 법원에 "수개월간 참담한 현실에 갇혀 살고 있다"며 "박순관 대표 부자 등 피고인들을 엄벌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8일 수원지법 형사14부(고권홍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박 대표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 사건 2차 공판에서 진술에 나선 '아리셀 참사' 희생자 유족 8명은 하나같이 이처럼 토로했다.
아리셀 연구소장 고(故) 김병철 씨 아내 최현주 씨는 "제 남편은 회사 문제를 적극 제기하며 개선하려 노력했다"며 "동시에 (이 사건 당일) 외국인 근로자들을 누구보다 먼저 구조하려 했던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런 사람이 가장 앞에서 죽었다. 박 대표 부자를 대신해 죽었다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박 대표 부자는 남편 명예를 지켜주기는 커녕 '빨리 합의하면 5000만 원 더 주고, 제 아이들 장학금까지 주겠다'하고, 지금까지도 처벌불원서를 제시하며 합의하라 하고 있다"고 울먹였다.
최 씨는 "남편을 위해 진심으로 사과했더라면, 제 아이들에게 정의로운 죽음이었다며 같이 죽지 못 해 미안하다고 사과했더라면 저는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며 "인간으로서 예의를 모르는 박 대표 부자를 법에 맞게 엄중 처벌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다른 피해자 중 1명인 고 엄정정 씨 어머니 이순희 씨는 "제 애가 제 곁을 떠난지 벌써 199일째"라며 "지금도 꿈만 같고, 현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가슴이 먹먹하고, 심장이 터질 것 같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아울러 "(반면) 유족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며 위로, 사과 한마디 없이 돈 몇푼 쥐어주며 처벌불원서를 받으려 하고 있는 회사 측을 용서할 수 없다"며 "억울하게 죽은 딸 원한을 풀어주려 이렇게 힘들게 버티고 있다"고 힙겹게 말을 이어갔다.
이 씨는 그러면서 재판부를 향해 "죄를 감면하려 구속돼서도 가만히 안 있고, 고가 변호사를 내세우고 있는 박 대표 부자에게 30년, 50년형을 선고해 엄정 처벌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제발 빕니다"라며 재판부를 향해 무릎을 꿇고 머리도 숙였다.
그동안 피고인석에 녹색 수의 차림으로 앉아 있던 박 대표와 그 아들 박중언 아리셀 총괄본부장은 내내 고개를 떨군 상태로 눈을 지그시 감거나 손으로 얼굴을 비비곤 했다.
이날 검찰은 오는 3월 24일 박 대표 부자 구속 기간이 만료되는 만큼 신속한 재판 진행을 위해 재판부에 '1주 2회' 집중심리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자 박 대표 변호인은 "피고인에게 보장된 권리들이 폄훼돼선 안 된다"며 "2주에 1회 정도 심리하는 걸 소망한다"고 맞섰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 최초 구속 기간은 2개월이다. 재판부가 2개월 단위로 2번에 걸쳐 갱신할 수 있으며, 최장 구속 기한은 6개월이다. 박 대표 등은 지난해 9월 24일 구속 기소된 바 있다.
결국 재판부는 양측 의견을 적절히 고려해 '1주 1회' 심리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재판부는 "신속한 재판도 중요하지만, 사안이 큰 만큼 심도 있게 심리하는 게 적절할 것 같다"고 그 사유를 설명했다.
재판부는 오는 13일 3차 공판을 열고, 박 대표 변호인으로부터 이 사건 증거에 대한 의견을 청취할 예정이다. 1주일 후인 20일에는 첫 증인신문을 진행할 계획이다. 당일 출석 예정인 증인은 총 5명으로 전해졌다.
박 대표는 지난 6월 24일 화성시 서신면 전곡리 리튬전지 제조공장 아리셀에서 발생한 화재로 근로자 23명이 숨지고, 8명이 다치게 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유해·위험요인 점검을 이행하지 않고, 중대재해 발생 대비 매뉴얼을 구비하지 않는 등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다.
박 본부장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업무상 과실치사상, 파견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다른 임직원 등 6명과 아리셀을 포함한 4개 법인도 각각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검찰은 아리셀이 2020년 5월 사업 시작 후 매년 적자가 나자 매출 증대를 위해 불법 파견받은 비숙련 노동력을 투입해 무리한 생산을 감행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보고 있다.
kkh@news1.kr
Copyright ⓒ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