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무섭다…밤잠 잘 못 자" 계엄 트라우마 덮친 한국
군사독재 참혹한 기억·자유 제한될 수 있단 두려움
전문가 "계엄 사태 시민 큰 충격…PTSD 발생 우려"
- 양희문 기자
(전국=뉴스1) 양희문 기자 = 지난 3일 전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비상계엄 사태 이후 많은 시민이 '계엄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
1980년대 군사독재에 맞서 싸웠던 중·장년층은 '과거의 참혹한 기억'을 떠올렸고, 영화로만 보던 계엄령을 처음 맞았던 젊은 층은 '자유가 제한될 수 있다'는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 당시 국민학교 5학년이었던 양 모 씨(50대)는 비상계엄 사태가 종료된 이후에도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어린 시절,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는 형과 친척들이 계엄군의 총칼을 피해 2박 3일간 산을 넘어 전남 화순 시골로 도망쳐왔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당시 양 씨의 형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광주에서 군인이 시민을 학살하고 있다'는 사실을 가족과 마을 사람에게 알렸다고 한다. 양 씨는 어린 나이임에도 수많은 시민이 무참히 살해됐다는 사실과 벌벌 떠는 형의 모습에 공포감을 느껴 한동안 제대로 된 일상생활을 하지 못했다.
양 씨의 머릿속에서 점점 희미해지던 1980년 5월의 무서운 기억은 44년 만인 지난 3일 다시 소환됐다.
그는 "광주·전남 사람들에게 계엄 선포는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으로, 공포 그 자체"라며 "707 부대원들의 항명과 국회의원들의 빠른 계엄 해제로 상황이 종결됐음에도 아직도 무섭다"고 말했다. 이어 "그때의 기억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 이 지역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집 밖에도 안 나오고 벌벌 떨고 있다"고 덧붙였다.
비상계엄을 역사 교과서나 영화로만 접했던 청년층도 군인들이 국회를 장악하려고 시도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넘어 공포감을 느끼고 있다.
직장인 이지은 씨(30·여)는 "계엄은 역사의 한 페이지로만 생각했고, 2020년대에 이런 일이 발생할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며 "다행히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자칫 잘못했다간 힘겹게 이뤄낸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는 공포가 엄습했다"고 전했다.
대학생 박 모 씨(27)는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이 민의를 대표하는 국회를 장악하려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군이 정권을 장악할 경우에 언제든 생명의 위협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계엄선포와 해제 과정이 심야에 발생해 '혹시 오늘 밤에도 무슨 일이 터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으로 밤잠을 설친다는 시민들도 많았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국민이 TV를 통해 실시간으로 비상계엄 사태를 지켜본 만큼 정신적 충격도 클 것이라고 진단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동영상 등 간접적인 경험이라고 해도 군인이 유리창을 부수며 국회로 들어오고 총부리를 겨눈 모습을 본 시민들은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며 "일부 시민에게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나타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yhm95@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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