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전세사기' 재판장 "남의 돈 받아 이렇게 사업 어딨나" 호통
남편 정 씨에게 징역 15년·아내 징역 6년·아들 징역 4년
재판장 "피고인 준법 의식이 있는지 상당히 의심스러워"
- 배수아 기자
(수원=뉴스1) 배수아 기자 = "이렇게 사업하는 사람이 어디있나. (그것도) 남의 돈 받아서. 피고인처럼 이렇게 사업하면 사업 안 할 사람이 어딨습니까"
일명 '수원 전세사기'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정모 씨 일가 선고 공판이 열린 9일 수원지법 형사11단독(부장판사 김수정) 302호 법정. 재판장은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편 정 씨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하면서 이같이 꾸짖었다.
정 씨 일가의 선고 결과를 직접 듣기 위해 법정 안은 피해자들로 가득 메워졌다.
김 부장판사는 남편 정 씨에게는 징역 15년을, 아내 김 씨에게는 징역 6년을, 아들에게는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지난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정 씨 부부에게 징역 15년, 아들에게 징역 12년을 각각 구형했는데, 남편 정 씨에게 검찰 구형과 같은 형량을 선고한 것이다.
다만, 아버지와 아들이 공모해 감정평가사인 아들이 '업감정'을 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희망가'를 제시한 것이 해당 가격으로 감정평가를 해달라고 유도하거나 부탁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다.
김 부장판사는 또 아들의 공모 시점에 대해서도 '고의성이 부족하고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검찰이 기소한 22년 6월이 아닌, 23년 3월부터 공모했다고 판단했다.
정 씨 일가는 수사기관에서는 범행을 부인했지만, 법정에서는 기본적인 사실관계는 인정했다. 다만 △보증보험이 가입돼 있는 부분 △묵시적 갱신·연장 갱신에 대해서는 '사기'가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김 부장판사는 이같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김 부장판사는 "정 씨는 본인의 총 자산이나 채무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고 경리 직원 한 명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비정상적으로 사업을 운영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부동산이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전제를 두고 사업을 하면서 경제 정책이 불리하게 전개될 것에 대한 리스크를 전혀 두지 않았다"며 "피고인의 어이없는 주먹구구식 사업운영으로 500여 명의 피해자가 760억 원 상당의 재산피해를 입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피해자들은 전 재산과 다름없고 주거 안정과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재산 피해보다 더 극심한 피해라고 보여진다"면서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보증금으로 피고인은 태양광 사업, 프랜차이즈 사업 등에 수십억을 투자하고도 투자금도 제대로 회수하지 못했고, 게임 아이템에 13억 원을 허비하는 등 준법의식이 있는지 상당히 의심스럽다"고 꾸짖었다.
정 씨 일가의 수원전세사기 사건으로 피해자 한 명은 실제 극단적 선택을 하기까지 한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을 마친 후 한 피해자는 울먹이며 정 씨 일가를 향해 "지옥에나 가"라고 소리치기도 했다.
정 씨 일가는 2018년 12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임대사업 등을 위해 법인 17개를 설립하고, 공인중개사 사무소도 3개를 직접 운영하면서 '무자본 갭투자'로 500여명에게 760억 원을 편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정 씨 일가가 조직적으로 전세사기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씨는 임대법인 사장, 정 씨 아내는 계약담당, 그 아들은 감정평가를 맡았다.
정 씨는 은행 대출을 받아 다수의 건물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법인설립 시 자본금 납입을 가장하고, 대출금 700억원이 넘는 채무초과 상태에서 구체적인 자금관리 계획 없이 '돌려막기'로 임대를 계속했다. 또 건물 5채를 명의신탁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감정평가사인 아들에게 감정평가를 직접 의뢰하면서 아들은 이른바 '업감정'을 하는 등 감정평가법을 위반했다. 남편 정 씨는 임차인들의 보증금으로 게임 아이템을 구매하는 등 개인적인 용도로 유용했다.
한편 이날 재판을 방청한 피해자 안 씨(20대·여)는 "전세보증금 피해금액 2억 원을 아직도 회복하지 못했다"면서 "아내와 아들의 선고가 검찰 구형보다 낮게 나온게 개탄스럽다"고 말했다.
sualuv@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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