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벌어 아이들 키워야" 보이스피싱 가담 40대 엄마, 국민참여재판서 '유죄'

"돈 벌어 생계 유지해야 하고, 엄마 손길 필요한 아이들 있어"
배심원 모두 '유죄' 평결…재판부 징역 4월·집유 1년 선고

의정부지방법원/뉴스1

(의정부=뉴스1) 양희문 기자 = "1년여 전 겨울이 끝나갈 때쯤 한 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그 전화가 저를 법정에 서게 만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해야 하고, 두 아이를 양육해야 합니다. 엄마의 마음을 제발 헤아려 주길 바랍니다."

23일 의정부지법 1호 법정 피고인석에서 A 씨(44·여)는 뚝뚝 떨어지는 눈물과 함께 떨리는 목소리로 이같이 말했다.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던 A 씨는 지난해 2월 구인·구직사이트에 자신의 이력서를 올렸다. 그로부터 며칠 뒤 그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대형 전자상거래 업체가 사무보조직을 제안한 것이다. 하루 기본일당 8만원에 거래처 직원을 만나 돈을 회사로 전달하면 건당 10만원을 주겠다는 조건이었다.

조건을 수락한 A 씨는 자신을 인사팀 '김 과장'이라고 소개한 B 씨에게 주민등록등본과 신분증, 통장사본을 보냈다. 이후 2월 23일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 한 학교 교문 앞에서 거래처 직원을 만나돈을 받으라'는 업무가 A 씨에게 배정됐다. 그는 장기 렌트한 차를 몰고 한 남성을 만나 현금 600만원을 건네받았다.

업체 측은 메신저를 이용해 또 다른 지시를 내렸다. 서울 광진구 한 장소에서 회사 직원을 만나 받은 돈을 주면 된다는 요구였다. A 씨는 본사가 아닌 불상의 장소에서 돈을 줘야 한다는 지시를 이상하게 여겨 본사 고객센터에 "김 과장을 아느냐"고 문의했지만, "금요일 늦은 시간이어서 월요일에 확인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고민 끝에 그는 성명불상의 회사 직원에게 돈을 건넸다.

집에 돌아온 A 씨는 '현금 전달'을 키워드로 인터넷에 검색했고, 자신이 보이스피싱(전화금융사기) 조직의 현금 수거책 역할에 가담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이내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사흘 뒤 본사 고객센터에서 "김 과장이라는 사람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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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A 씨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 수거책 역할에 가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 씨는 이날 국민참여재판으로 열린 공판에서 "신중하게 알아보지 못한 자신에게 화가 난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분에게 경제적 피해를 끼쳐 죄송하다"며 운을 뗐다. 이어 "경제적으로 최악의 상황을 겪고 있는데, 아직 엄마 손길이 필요한 11살과 9살 아이가 있다. 아이들에게 떳떳한 엄마가 되고 싶다"며 흐느꼈다.

A 씨의 변호인도 "차상위계층인 피고인은 임대주택에서 어렵게 아이들을 키우고 있다. 피고인이 얻은 이익도 25만원에 불과하다"며 "피고인도 피해자처럼 범죄조직에 속았다. 무죄를 바라지만 설령 유죄를 선고하더라도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 달라"고 변론했다.

하지만 검찰은 A 씨가 인천에서 돈을 받고 서울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유튜브와 인터넷에 '현금 전달'을 키워드로 검색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점을 볼 때 보이스피싱 범죄를 인식하고 범행한 것으로 봤다. 이때 A 씨가 경찰에 신고만 했더라도 그가 법정에 서는 일도, 피해자가 경제적 손실을 보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검찰은 강조했다.

검찰은 또 A 씨가 법정에서 "이동 중인 차 안이 아니라 퇴근 후 집에서 관련 범죄를 검색했다"고 진술을 번복한 점도 주장의 신빙성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A 씨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다.

배심원 7명도 모두 '유죄' 평결을 내렸다. 양형 의견은 벌금형부터 징역형의 집행유예까지 다양했다.

사건을 심리한 의정부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오창섭)는 배심원 의견을 고려해 징역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오 부장판사는 "피고인의 수익이 그다지 크지 않은 점, 벌금형을 초과하는 형사처벌 전력이 없는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yhm9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