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관·공보의 투입 다행이지만…"전공의 이탈 메우긴 역부족"(종합)

(전국=뉴스1) 김기현 남승렬 박지현 조아서 김경현 기자 =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에 따른 의료 공백 최소화를 위해 군의관·공중보건의(공보의)가 전격 투입됐지만, 전국 의료 현장의 혼란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더구나 다수의 고령자가 거주하는 일부 의료취약지역에서는 공보의가 떠나면서 또 다른 의료 공백에 노출되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어 우려 목소리가 큰 상황이다.

의대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 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13일 서울시내 병원에서 한 의료진이 '환자의 권리와 의무' 게시물 앞을 지나고 있다. 이날 한덕수 국무총리는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의과대학 정원 증원 재논의 등을 요구하는 의대 교수들에게 "명분 없는 집단행동에 동참하는 대신, 제자들이 환자 곁으로 돌아오도록 적극 설득해달라"고 밝혔다. 2024.3.13/뉴스1 ⓒ News1 이광호 기자

◇"공보의 왔다지만, 달라진 건…" 의료계 혼란 '여전'

집단 사직한 전공의들의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투입된 군의관·공보의 정식 근무 첫날인 13일 오전 광주 전남대병원. 의료진 사이에서는 약간의 숨통이 트인다면서도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156명의 전공의가 의료 현장을 떠났지만 보충된 공보의는 고작 8명에 그치기 때문이다. 수술실 앞에서 만난 A 간호사는 "대체 인력이 투입된다 하니 다행스럽지만 전공의 이탈을 메우기에는 숫자부터 역부족이 아닌가 싶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같은 날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구미동 분당서울대병원에서 만난 B 간호사 반응도 비슷했다. 그는 "공보의가 업무를 시작하긴 했으나 외래진료에서는 사실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공보의 투입 전과 상황이 똑같은 수준"이라고 토로했다.

이어 "공보의 대다수가 중환자실이나 응급실과 같은 곳에만 배치됐기 때문"이라며 "집단 사직한 전공의 숫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어서 당연한 현상이겠지만, 너무 지친다"고 호소했다.

의대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공보의와 군의관들이 의료기관에 파견된 13일 대전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들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2024.3.13/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진료 못받고, 수술 못하고…환자들 "선량한 국민만 피해"

급기야 이날 오전 대구 경북대병원에서는 두통을 호소하는 최 모 씨(80대)가 장시간 진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최 씨 보호자인 50대 여성 C 씨는 "어머님이 갑자기 심한 두통을 호소해 병원을 찾았다"며 의료진을 재촉하기도 했다.

급한 수술 일정을 끝내 잡지 못하는 환자도 여럿 있었다. 임 모 씨(44)는 "전공의 사직으로 인해 아버지의 수술이 날짜도 확정짓지 못한 채 연기됐다"며 "공보의 4명이 왔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대구 달서구 호산동에서 온 정 모 씨(60대)는 "자기 가족이라면 무책임하게 의료 현장을 떠나겠느냐"며 "이번 기회에 의사 수를 늘리고, 의사들이 집단행동을 할 수 없도록 정부가 법적 조치를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비슷한 시각 부산대병원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곳에서 만난 김모 씨(63)는 "입원한 5일 동안 담당 의사가 주말도 없이 출근하더라"면서 "턱뼈에 금이 가 약물치료 받고 있는데 입원하기까지 일주일 기다렸다"고 말했다. 이어 "병동에 의사도 많이 없지만 환자도 없다"며 "그 많던 환자가 다 순식간에 나아서 퇴원했겠냐, 교수들마저 병원을 떠난다면 환자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우려했다.

13일 찾은 장수군 계북면 보건지소 출입문에는 공보의 파견에 따른 진료 축소에 관한 안내문이 붙어있다. 2024.03.13/뉴스1 김경현 기자

◇"당뇨약 떨어졌는데"…공보의 차출에 시골 주민들 '막막'

한편으로는 공보의 차출로 인한 또 다른 의료 공백이 발생하는 등 풍선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날 오전 전북 장수군 계북면 내 유일한 의료기관인 보건지소 출입문에는 '의료대란에 따른 축소 진료'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계북면 보건지소에 있었던 단 한명의 공보의가 충남대병원으로 4주간 차출돼 진료가 불가능해지면서다.

유일한 의료 인력이 자리를 비우면서 매일 받을 수 있었던 의과 진료는 주 1회(화요일)로 축소됐다. 이마저도 인근 보건지소의 인력을 지원받아 운영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곳을 찾는 마을주민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평소 휴진이 발생하면 안내 연락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소식을 전달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 모 씨(84‧여)는 "4주간 진료가 축소되는 걸 알았다면 미리 약을 처방 받았을 것"이라며 "당뇨 약이 떨어지는 것도 걱정되지만, 이 기간에 갑자기 몸이라도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 자녀들이 걱정할까봐 말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최 모 씨(76·여)도 "거동이 불편해서 경로당에 나오는 것도 주민들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며 "이런 상황에서 시내로 나가 병원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몸이 아프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전국 19개 의과대학 교수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대응해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오는 15일까지 소속 대학 교수와 수련병원 임상진료 교수의 의사를 물어 사직서 제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사진은 13일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에서 이동하는 의료진들. 2024.3.13/뉴스1 ⓒ News1 김진환 기자

◇출구 없는 '의-정 강대강 대치'…교수들은 '집단 사직'도

이런 가운데 전공의 집단 이탈에 이어 정부의 행정처분, 의대 증원 강행 등에 반발한 의대 교수들까지 사직서 제출을 예고하고 있어 혼란이 더욱 가중되는 모양새다. 서울대, 연세대, 가톨릭대, 울산대 등을 포함한 19개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저녁 온라인에서 만나 전국 의과대학 교수 비대위를 구성해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지난 11일 정부가 해결 방안을 내놓지 않을 경우 18일 집단 사직하겠다고 의결한 바 있다. 다만 교수들은 사직서를 제출한 후에도 사직서가 수리되기 전까지는 응급·중환자 진료는 계속한다고 밝혔다.

서울의대 교수들이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교수들의 사직행렬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예정이다. 가톨릭대 교수협의회도 이번 주 중 회의를 열고 집단행동 여부 등을 논의한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도 오는 14일 모여 의대생 휴학사태 대응책을 논의한다.

앞서 정부는 11일까지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 5556명에게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 사전통지서를 발송했다.

집단 소송도 이어지고 있다. 전날 의과대학 교수들, 각 수련병원 전공의 대표 등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이주호 교육부장관을 상대로 "의대정원 2000명 증원을 취소해달라"며 서울행정법원에 행정소송 및 집행정지 소송을 제기했다.

박민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제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13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의사 집단행동' 중대본 회의 내용을 발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제공) 2024.3.13/뉴스1

◇정부, 군의관·공보의 추가 투입 계획…"대화 문 열려 있어"

한편 보건복지부는 이날부터 4주간 빅5 병원(서울아산, 서울대, 삼성서울, 신촌세브란스, 서울성모)과 지역 거점 국립대병원을 포함한 병원 20곳에 군의관 20명, 공보의 138명 등 총 158명을 진료 현장에 투입했다. 또 다음주 군의관 50명, 공보의 150명을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다.

공보의는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등 면허를 취득한 사람이 36개월간 군복무를 대신해 농어촌 지역 보건소나 국공립 병원 등에서 근무하는 제도다. 군의관은 군병원, 국군수도병원 등 상급종합병원 등 군대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다.

이에 대해 박민수 차관은 "인력을 (대학병원에) 우선 배치해 시급하고 중증도가 높은 환자들이 제때 진료받을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최대를 유지하는 것"이라며 "지역의료의 핵심적인 내용들은 손상이 가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인력을 차출했고, 부족한 인력에 대해서는 순회 진료 등을 통해 그 지역 내에 있는 다른 의료자원의 연계를 통해 만성기질환 대응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자체와 협력해 운영해 나가겠다"고 했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전공의 이탈로 인한 의료공백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정부는 의료진과 비공개로 소통하고 있지만, 의대 증원 2000명을 고수하면서 입장차를 줄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차관은 "정부는 2000명 증원에 대해서는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더 이상 늦추기 어려운 과제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도 대화가 가능하다'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것은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kk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