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 225억 수원전세사기 대책 시급한데" 10분만에 끝난 첫 공판

변호인측 의견 제시도 못한채 끝나…피해자들 허탈

수원지역을 중심으로 임차인들에게 약 714억 원 상당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혐의를 받는 정모 씨 부부가 지난해 12월8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남부경찰서에서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2023.12.8/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수원=뉴스1) 배수아 기자 = 경기 수원지역을 중심으로 다수의 빌라와 오피스텔 약 800채를 보유한 채 임차인들에게 225억원 상당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정모씨 일가의 첫 재판이 '재판준비 부족'으로 약 10분만에 흐지부지 끝났다.

이들이 재판에 넘겨진지 두 달이 돼가는 시점인데다 피해자만 204명에 달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에서 검찰과 변호인측의 의견소통 부재로 인해 첫 재판은 피해자들을 두 번 울게 했다.

22일 수원지법 형사11단독 김수정 부장판사는 사기, 감정평가법위반, 업무상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돼 재판에 넘겨진 정씨 부부 A씨와 B씨, 그의 아들 C씨에 대한 첫 재판을 열었다.

정씨 일가가 법정에 들어서자 방청석에 있던 피해자 30여명은 곳곳에서 한숨을 내쉬거나 탄식했다.

김 부장판사는 검찰의 공소사실에 대한 A씨측의 의견을 변호인에게 물었다. 그러자 A씨측 변호인은 "공소사실에 대한 열람등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아 의견 제시를 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김 부장판사가 "지난해 12월27일에 기소됐고 첫번째 공판기일이 두 달전에 잡혔는데 아직도 열람등사를 하지 않은 이유가 뭐냐"고 하자 변호인은 "증거목록을 이번주 초에 받았다"면서 "3월7일부터 등사가 가능하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답했다.

정씨 일가에 대한 증거목록은 180페이지, 증거기록은 2만페이지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김 부장판사는 "검찰에서 협조하라"며 "두 달을 허비했는데 아직 증거를 못봤다는 건 (말이 안된다)"이라고 호통했다.

그러자 검찰측은 "특별히 전달받은 게 없는데 변호인측에서 적극적으로 말씀하시면 등사 협조하겠다"며 "등사 애로사항이 있으면 주임검사실로 연락을 했을 거라 생각하는데 전혀 연락이 없었다"고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사기 혐의는 피해자가 많아서 그렇다하더라도 나머지 공소사실 부분에 대해서 일부라도 되는대로 받아야 한다"며 재판의 빠른 진행을 촉구했다.

해당 재판의 다음 기일은 오는 3월11일 오후 2시 열린다.

첫 재판을 앞두고 전세사기 피해자 경기대책위원회가 22일 수원지법 앞에서 이들의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024.2.22/뉴스1 ⓒ News1 배수아 기자

한편 이날 첫 재판을 앞두고 전세사기 피해자 경기대책위원회는 수원지법 앞에서 이들의 엄벌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기자회견은 정씨 일가에게서 피해를 본 피해자 30여명과 경기대학생연대, 국민의힘 김원재 수원무 국회의원 예비후보, 더불어민주당 염태영 수원무 후보, 진보당 김식 수원을 후보가 참석해 힘을 보탰다.

이들은 "피해자들은 일상이 무너지고 하루하루를 출구없는 절망 속에서 보내고 있다"면서 "악성임대인 정씨 일가를 엄벌해 이 절망 속에서 피해자들이 한줄기 희망을 갖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정씨 부부는 2018년 12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임대사업 등을 위해 법인 17개를 설립하고, 공인중개사 사무소도 3개를 직접 운영했다. 이어 2021년 1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수원시 일대에서 개인과 법인 명의를 이용해 '무자본 갭투자'를 벌였고, 피해자 214명으로부터 전세보증금 약 225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들이 무자본 갭투자로 사들인 빌라와 오피스텔은 약 800호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들 일가족이 조직적으로 전세사기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보고 있다. 정씨는 임대법인 사장, 정씨 아내는 계약 담당, 정씨 아들은 감정평가를 맡았다.

정씨는 은행 대출을 받아 다수의 건물을 취득하는 과정에서 법인 설립 시 자본금 납입을 가장하고, 대출금 700억원이 넘는 채무초과 상태에서 구체적인 자금관리 계획 없이 '돌려막기'로 임대를 계속했다. 또 건물 5채를 명의신탁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검찰 수사 결과 남편 정씨는 2022년 6월, 감정평가사인 아들에게 감정평가를 직접 의뢰하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들 C씨는 같은 건물에서 고가 거래된 특이 거래를 기준으로 감정평가를 하는 이른바 '업 감정'을 하는 등 감정평가법을 위반했다.

정씨는 또 임차인들의 보증금으로 '게임 아이템'을 구매하는 등 개인적인 용도로 유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정씨가 운영하는 임대 법인의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구매해 현금화하거나 법인카드로 결제하고 현금으로 돌려받는 이른바 '깡' 수법을 써 1억원의 업무상 배임 혐의도 받는다.

검찰과 경찰은 매주 '수원 전세사기 수사 실무협의회'를 열고 최신 전세사기 판결문을 분석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sualuv@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