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강드라이브에도 멈추지 않는 집단행동…'진료 공백' 현실화(종합2보)

빅5 '한산'·지역 병원 '폭풍전야'
수술 취소·무기한 연기 34건 접수

정부의 의대정원 확대에 반발해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으로 근무를 중단한 20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 병원 진료실 앞이 환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2024.2.20/뉴스1 ⓒ News1 유경석 기자

(전국=뉴스1) 최대호 박소영 유재규 오현지 조아서 장성희 이기범 천선휴 기자 = 수도권 대형병원 '빅5' 전공의들이 당초 선언대로 20일부터 근무 중단을 시작한 가운데 지역 대학병원 역시 전공의들의 사직서 제출과 이탈로 인한 의료공백이 현실화했다.

정부가 전공의들의 이탈에 따른 피해를 접수하기 위해 설치한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는 운영 첫날부터 상담이 쇄도했다.

상담 신청은 100여건에 달했고, 실제 수술 취소나 무기한 연기로 인해 피해를 보았다는 신고도 34건으로 집계됐다.

정부가 근무지 이탈 전공의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고 비상 진료체계를 가동했지만,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 이탈'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되면서 전국의 의료 현장에 드리운 불안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20일 정부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주요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의 근무현황을 점검한 결과 전공의의 절반 수준인 6415명이 사직서를 제출했고, 1630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

전공의 이탈은 연세 세브란스 등 10개 수련병원에 집중됐다. 10개 수련병원에서 일하는 전공의는 총 1630명으로, 이 중 1091명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를 제출한 이들 중 현장 이탈 인원은 757명에 달한다. 전국 병원에서 근무지를 이탈한 전체 전공의 가운데 46%가 10개 수련 병원 소속이다.

해군포항병원 의료진들이 20일 오후 민간인 진료에 대비해 의료장비를 점검하고 있다. 군 당국은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방침에 반발한 의료계의 집단행동으로 발생하는 의료공백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군 의료체계를 민간에 개방했다. 2024.2.20/뉴스1 ⓒ News1 최창호 기자

이날 병원 현장을 취재한 결과, 전공의 파업에 대비해 진료나 입원 일정을 조정한 탓인지 '빅5' 병원(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성모병원)은 대체로 한산했다.

반면 지역의 병원은 환자와 보호자들로 붐볐다. 아직 수술이나 진료가 밀리지 않아 크게 동요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환자들은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경기 남부 최대 규모 상급종합병원인 수원시 소재 아주대병원은 이날 다른 날과 다름없이 내원한 환자와 보호자들로 붐볐다. 각 과에 진료받기 위해 대기 중인 환자들은 2~4주 전에 예약을 잡아놓은 환자들이다. 외래진료는 대학교수 등 전문의가 담당하고 있기에 혼잡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전날 오후부터 아주대병원 소속 전공의 130여명이 무더기로 사직서를 제출해 신규 예약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병원에서 마주친 30대 여성 A 씨는 정형외과 예약을 할 수 없다는 병원 측의 안내를 받았다고 말했다.

다른 병원들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인천 남동구 가천대길병원은 접수대와 진료실 앞은 만석으로, 파업 소식에 진료나 수술 예약을 미리 당겨서 진행하거나 병원을 찾은 환자들이 몰리는 모습이었다. 진료 예약을 포기하고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도 보였다.

기관지 질환을 앓고 있는 어머니와 병원에 온 60대 여성 B 씨는 "어머니가 연세가 많아 치료가 빨리 진행돼야 하는 데 불안하다"며 "수술을 하는 환자가 아니라 후순위로 밀릴까 걱정된다"고 했다.

수술이 취소되거나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는 환자들도 있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30대 남성 C 씨는 "수술 전날 퇴원하라고 하더라. 화가 나 보건복지부에 신고하려다 참았다"며 울분을 토했다. C 씨 어머니는 간암수술을 위해 부산에서 올라와 지난 18일 입원했다. 하지만 20일 시작된 전공의 파업 여파로 19일 수술 취소를 통보받았다.

충남 천안 단국대병원에서 오는 26일 진료 예정돼 있던 40대 여성 D 씨는 20일 오전 병원으로부터 안내 문자를 받았다. 예정된 진료가 의사 부족으로 휴진됐다며 진료 변경이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피부암을 앓는 고모의 발가락 절단수술이 취소됐다는 E 씨는 "19일 입원, 20일 수술을 앞두고 16일 밤 부산지역 모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취소한다는 연락을 받았다"며 "4개월을 기다렸는데 전문의 파업으로 수술을 취소한다고 하더라,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냐"고 토로했다.

부산 서구 동아대병원에서 만난 F 씨는 퇴원수속을 밟고 병원을 나서고 있었다. 그는 병이 자주 재발해 입원했는데 갑자기 퇴원 일자가 잡혔다고 했다.

제주도 유일의 국립대 병원인 제주대학교병원에서는 H 씨가 전날 밤 서귀포 소재 자택 화장실에서 넘어진 뒤 대퇴골 골절 진단을 받고 이날 이송됐지만 "의사가 없어 수술할 수 없다"고 전달받았다. 그는 휠체어에 탄 채 다리만 부여잡고 있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20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열린 의사 집단행동 관련 시·도 부단체장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이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의사 집단행동 관련 비상진료체계, 지자체 대응사항 및 협조사항 등을 논의했다. (공동취재) 2024.2.20/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정부는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며 현장 복귀를 촉구했다. 아울러 의료공백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전국 12개 군 병원 응급실을 개방하는 등 비상 진료체계를 가동했다.

박민수 보건복지부 2차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정부는 이미 업무개시명령을 한 29명을 제외하고, 남은 728명에 대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했다"며 "전공의를 대신해 입원 환자를 진료하는 전문의에게 건강보험 보상을 실시하고 수련 중 응급실·중환자실에 투입되는 인턴에게는 해당 기간을 필수 진료과 수련으로 인정하는 등 수련 이수 기준도 완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sun0701@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