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채혈비용 10만원 운전자 부담" 경찰 잘못 안내 '음주운전 무죄'

호흡측정 당시 0.137% 만취…1회 측정만으로 범죄 증명 못해
1심 벌금 700만원 유죄, 2심 "범죄 증명 없는 경우" 무죄 선고

의정부지법 본관 전경

(의정부=뉴스1) 이상휼 기자 = 음주운전 단속 경찰관이 호흡측정기 검사 이후 운전자의 채혈측정 요구에 제대로 응하지 않고 귀가시켰으므로, 호흡측정기에 의한 측정 결과만으로는 음주운전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경찰청은 채혈검사를 위해 예산을 배정했음에도, 단속 경찰관은 운전자에게 "병원이 요구하는 채혈비용 10만원은 선생님이 부담해야 합니다"라고 고지했고, 운전자가 이를 거부하자 경찰은 그를 귀가조치했다.

원심 재판부는 유죄 판결했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이 같은 음주단속 절차의 하자에 대해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라고 판단했다.

15일 법조계에 따르면, 피고인 A씨는 2020년 10월12일 오전 1시25분께 술을 먹고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서 자신의 폭스바겐을 몰아 의정부시 산곡동 구리포천고속도로까지 24㎞를 운전한 혐의(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로 기소됐다.

단속 당시 고속도로를 순찰하던 경찰관은 좌우로 심하게 비틀거리며 주행하는 A씨의 차를 발견해 정차시킨 뒤 호흡조사를 실시해 적발했다.

호흡측정기로 음주수치를 측정한 결과 A씨의 당시 혈중알코올농도는 0.137%의 만취상태였다.

A씨는 채혈을 요구했고 경찰과 함께 병원으로 이동했는데, 병원 직원은 A씨와 경찰관에게 "야간이고 응급실 진료이기 때문에 채혈비용 10만원을 따로 받는다"고 안내했다.

이에 경찰관은 A씨에게 "선생님이 피를 뽑고 싶다고 해서 데려왔는데 비용을 지불해서 뽑을 생각이 없다는 말인가"라고 물었고, A씨는 "내가 돈 내가면서 피를 뽑나, 마음대로 하라"고 대꾸했다.

그러자 경찰관은 "우리는 뽑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말했고, A씨는 "나도 안 뽑아"라고 대답했다. 결국 A씨는 채혈을 하지 않고 귀가했다.

수사기관은 A씨에 대해 음주운전죄가 성립한다고 판단, 약식 벌금 처분을 내렸다.

A씨는 약식 벌금 명령에 불복해 정식재판을 청구했고 "음주운전한 사실 자체는 인정하지만, 단속 경찰관은 도로교통법상 부여된 혈액채취 방법에 의한 측정기회를 박탈했다. 단 1회의 호흡측정 결과는 그 신빙성이 의심스러워 음주운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의정부지법 형사단독 1심 재판부는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음주운전한 사실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면서 유죄로 판단, A씨에 대해 지난해 11월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A씨는 원심 판결에 불복해 "단속 경찰관은 피고인의 진정한 의사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피고인에 대해 혈액채취의 방법에 의한 측정을 실시하지 않았으므로, 호흡측정기에 의한 측정 결과만으로 피고인의 음주운전 사실을 증명할 수 없다"면서 항소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운전자 의견진술란에 '혈액채취를 원합니다'라고 요구해 채혈을 요구한 사실이 있고, 인근 병원으로 경찰관과 A씨가 이동한 사실이 있지만, 결국 채혈이 이뤄지지 않은 점에 주목했다.

항소심인 의정부지법 형사2부(부장판사 최종진)는 "단속 경찰관이 채혈비용 10만원을 피고인이 부담할 것을 고지하자, 피고인은 채혈비용을 부담하면서까지 채혈할 생각이 없다는 의사를 밝히고 귀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찰은 음주측정에 필요한 혈액채취 관련 지정병원에서 채혈대장을 작성해 채혈하는 절차를 취하며, 경찰청에서는 채혈비용에 소요되는 예산으로 건당 3100원을 배정하고 매년 채혈비용의 예산을 확보해 집행 중이다"고 밝혔다.

또한 "국가는 형벌권의 주체로서 적극적 형벌권을 행사할 책임이 있어 그에 소요되는 비용(수사비용, 검증비용, 공판비용) 등을 부담해야 하는 점을 종합하면, 음주측정 채혈비용은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며 "피고인이 채혈비용을 자신이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착오를 일으켜 '채혈비용을 내면서까지 채혈할 의사는 없다'는 의사를 밝힌 것은 채혈에 의한 측정요구를 철회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채혈비용을 국가가 부담한다는 사실을 피고인에게 고지해 피고인이 채혈에 의한 측정요구를 철회할 것인지 여부에 관해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조언해주거나, 채혈비용을 내지 않고 채혈할 수 있는 다른 의료기관을 알아보는 등으로 채혈 음주측정이 가능한 다른 방법을 강구했어야 한다. 경찰관은 이러한 조치를 하지 않고 피고인을 귀가시켰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따라서 피고인에 대한 호흡측정기에 의한 측정 결과만으로는 피고인의 음주운전 사실을 인정할 수 없고, 피고인이 이 사건 공소사실 기재와 같이 혈중알코올농도 0.137%의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를 운전했다고 보기 부족해 이 사건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 이 사건 공소사실은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daidaloz@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