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재구성] "날 무시해?"…70대 홀몸노인 칼부림 '참극'

여성 4명 살해결심…장문의 유서 남긴 채 범행
1년 전 아내 살해하려 준비한 흉기로 2명 살해
심신 미약 주장하면서도 피해자엔 적대감 여전

(경기=뉴스1) 최대호 기자 = 올해 6월 경기 군포시에서 발생한 이른바 '다방 여주인 흉기살해' 사건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70대 독거노인이 저지른 참극이었다.

노인 이모(70)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명을 살해하고 1명을 다치게 했다. '자신을 만나주지 않고 무시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검찰은 참혹한 결과를 초래한 이씨에 대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형을 구형했고 사건을 심리한 재판부는 지난 20일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또 이씨의 생전 출소여부를 알 수 없음에도 10년간의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하고 피해자 측에 대한 접근도 금지시켰다.

재판부가 고령인 이씨에게 이 같은 선고를 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수사 과정에서 이씨가 살해하려고 계획했던 대상자가 4명이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드러났고 범행에 사용한 흉기 또한 자신과 떨어져 사는 부인을 살해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준비해뒀던 것으로 밝혀졌다.

게다가 이씨는 이 같은 잔혹범죄를 저지르고도 피해자들에 대한 적대감을 떨쳐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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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와 험담'에 격분…살해 결심=이씨는 가정불화로 인해 지난해 9월 아내와 떨어져 생활하기 시작했고 가족 및 친척들과도 별다른 교류를 갖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씨는 같은 해 10월 거주지 인근의 한 다방을 찾았고 그곳에서 A(58·여)씨를 만났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친구가 필요했던 이씨는 다방 출입이 잦아졌고 자연스레 A씨의 지인인 B(57·여)씨, C(54·여)씨, D(52·여)씨도 알게 됐다.

이씨는 자신의 고민을 들어주는 A씨를 좋아하기 시작했고 서로의 관계가 발전되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수개월 동안 자신의 속내를 거듭 표현했지만 A씨에게 돌아오는 것은 '거(비)렁뱅이', '바람둥이' 등 비난 섞인 말 뿐이었다.

이씨는 A씨의 말투와 행동에서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A씨가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를 B씨 등이 A씨에게 자신에 대한 험담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A씨가 자신의 보낸 마지막 문자에도 답을 하지 않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이씨는 자신을 만나주지 않고 무시하는 A씨와 일행 모두를 죽이겠다는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됐다.

◇유서 쓴 뒤 흉기 2개 준비해 범행=살해 계획을 세운 A씨는 유서를 썼다. 유서에는 'A씨와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데, 세 명의 여자가 자주 어울려 다니면서 장사해야 할 A씨를 밖으로 불러내 술을 마신다', '여자들은 내가 돈이 없다고 무시한다', 'A씨가 이 여자들과 어울리느라 나와 만나주지 않는다' 등 피해 여성들에 대한 불만들을 기록했다. 유서는 무려 A4용지 18장 분량에 달했다.

사건 당일 아침 이씨는 유서와 함께 집안 장롱 속에 있던 흉기 2개를 챙겼다. 흉기는 아내와 떨어져 생활하게 되면서 '아내를 죽여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준비해뒀던 것이었다.

흉기 1개는 바지 주머니에, 1개는 상의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온 이씨는 A씨가 있는 다방으로 향했다. 이씨는 A씨와 지인들이 함께 다방에 모여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다방 인근 거리에서 B씨와 C씨를 목격한 이씨는 잠시 몸을 숨겼다. 그리고 B씨와 C씨가 지하 1층 A씨의 가게로 들어가자 곧장 뒤따라 들어갔다.

이씨는 먼저 가게 주방에 서 있던 B씨에게 다가가 바지 주머니에서 흉기를 꺼내 휘둘렀고 B씨가 쓰러지자 연이어 A씨에게도 흉기를 휘둘렀다.

함께 있던 C씨가 이를 목격하고 다방 밖으로 달아나자 뒤따라가 흉기를 휘둘렀다.

A씨와 B씨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 구급대에 의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목숨을 잃었고 C씨는 2~3주 간 치료를 요하는 상해를 당했다. D씨는 이날 현장에 오지 않아 화를 면했다.

◇재판부 "반성 없고 피해자에 여전히 적대감"=잔혹 범죄를 저지른 이씨는 수사당국에 의해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이씨는 재판과정에서도 진정한 반성을 하지 않았다.

이씨는 심신미약 상태에서의 범행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씨의 주장을 받아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씨가 A씨를 제외한 나머지 피해자들에 대한 적개심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고령인 이씨에 대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형을 구형했다.

그리고 재판부는 이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하고 전자발찌 부착 10년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이씨의 범행 동기에 참작할 여지가 없고 범행의 수단이 잔인하며 2명의 피해자가 사망하는 등 결과가 중대한 점에 비춰 그 죄질 및 범정이 지극히 나쁘다"고 판시했다.

이어 "숨진 2명의 피해자가 사망에 이르기까지 극도의 공포와 고통을 겪었을 것으로 보이고 피해자의 유족들과 다친 피해자가 받았을 신체·정신적 충격이 상당할 것임에도 이씨는 이를 위로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이 같은 사정들을 종합하면 이씨를 사회로부터 장기간 격리시키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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