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 살해 혐의 '24년 옥살이' 무기수 김신혜…재심서 '무죄'(종합)

법원 "경찰 강압수사·피고인 허위 자백…범행 동기 없어"
출소 김 씨 "아버지 못 지켜드려 죄송"…변호사 "진실의 힘"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확정받은 김신혜 씨가 6일 열린 재심을 통해 24년 만에 무죄를 선고 받고 전남 장흥교도소에서 출소하고 있다. 사진은 화성 연쇄 살인사건 진범 대신 누명을 쓰고 20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피해자가 김 씨에게 꽃다발을 건네는 모습. 2024.1.6/뉴스1 ⓒ News1 최성국 기자

(해남·장흥=뉴스1) 최성국 기자 =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김신혜 씨(47·여)가 24년 만에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아 출소했다.

광주지법 해남지원 제1형사부(지원장 박현수)는 6일 존속살해 등의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확정받은 김 씨의 재심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날 선고 공판은 김 씨가 불출석 상태에서 진행됐다.

김 씨(당시 23세)는 2000년 3월 7일 전남 완도군에서 수면제 30여 알을 양주 2잔에 타서 건네는 식으로 아버지(당시 52세)에 살해하고 같은 날 오전 5시 50분쯤 완도군 정도리 외딴 버스정류장 앞에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수사기관은 김 씨를 범인으로 추정했다. 살인 동기는 아버지의 성적 학대와 '막대한 보험금'이었다.

김 씨는 친척의 손에 이끌려 경찰서에 갔고 경찰에게 "제가 범인"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재판 과정에서 "'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의 말을 듣고 자신이 동생 대신 교도소에 가려고 거짓 자백을 했다"며 무죄를 호소했다.

대법원은 김 씨에게 무기징역 확정 판결을 내렸다.

법원은 지난 2015년 경찰의 강압 수사, 영장 없는 압수수색, 절차적 불법 행위를 주장하는 김 씨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였다.

김 씨의 변호는 재심 전문 변호사인 박준영 변호사가 맡았다. 재판은 피고인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에 거듭 지연됐고 변호사가 수차례 바뀌었으나, 결국 박 변호사가 끝맺음을 했다.

검찰은 재심에서도 "당시 수사기관은 위법 수사를 하지 않았고 범인은 김 씨가 맞다"며 원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그러나 재심 재판부의 판단은 '무죄'였다.

재판부는 김 씨가 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 자백'을 했고, 경찰의 강압적인 수사로 확보된 김 씨의 거짓 진술과 관련 증거들이 모두 '증거로서의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 씨의 범행 동기와 범행 방식이 모두 공소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부검 결과 피해자의 몸에서는 약물 복용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 피고인이 아버지에게 든 보험은 2년이 지나야 문제 없이 보험금을 받을 수 있었는데 보험설계사 자격이 있는 피고인이 보험금을 위해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볼 수 없다. 피해자의 피고인에 대한 성적학대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피고인은 수사기관의 범행 추정 시간에 앞서 친구들에게 만나자고 연락을 했는데 만일 친구들이 나왔다면 범행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수도 있는 등 범행 직전 피고인의 행적은 계획적 살인을 저지른 사람의 행동으로 보기에는 석연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망 당시 혈중알코올농도가 0.303%였던 것은 독립적인 사망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증거들의 증거 능력이 없고 피고인의 과거 자백 진술은 신빙성과 임의성이 담보됐다고 인정하기 어려운 점 등을 종합할 때 피고인은 무죄"라고 판시했다.

김 씨는 이날 장흥교도소에서 출소해 "고생만 하시다가 돌아가진 아버지를 끝까지 못 지켜드려 죄송하다"며 "잘못된 부분이 곧바로 고쳐졌으면 좋았을 텐데 우리나라 사법체제 안에서는 24년 만에 바로 잡힐 일인가 하는 생각이, 이렇게 힘든 일인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장흥교도소 앞에서는 화성 연쇄 살인사건의 진범 대신 20년 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다 재심으로 무죄를 받은 윤성여 씨와 낙동강변 살인사건으로 21년 만에 풀려나 재심에서 무죄를 받은 장동익 씨가 박준영 재심 전문변호사와 함께 김 씨를 마중했다.

이들은 김 씨에게 꽃다발을 주며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범인이자 죄인 취급을 받아온 세월에 대한 위로를 건넸다.

박준영 변호사는 "24년간 무죄를 주장해 온 당사자의 진실의 힘이 가장 강력한 증거였다"며 "한 인권 운동가의 공론화로 사건의 진실이 묻히지 않았다. 결국 진실은 밝혀진다"고 강조했다.

이어 "피고인은 24년간 독방에서 노역 없이 홀로 투쟁하고 방치됐다"며 "출소 후 이 사건이 소비되지 않고 피고인의 마음과 상처가 회복될 수 있도록 공동체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씨는 재심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검찰이 불복, 항소를 제기하면 광주고법에서 2심 재판을 받게 된다.

stare@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