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소년이 온다'로 다시 살아난 오월 열사들
'소년이 온다' 주인공 17살 문재학 열사, 계엄군 맞서다 숨져
계엄 봉쇄 속 '투사화보' 필경…참상 알린 박용준 열사
- 최성국 기자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 한강 작가가 11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가운데 그의 대표작인 '소년이 온다'를 통해 1980년 5월 계엄군에 맞서다 숨진 문재학·박용준 열사의 삶이 재조명되고 있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시각, 광주시청에서는 인공지능 홀로그램으로 복원된 '문재학 열사'가 한강 작가와 국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문재학 열사는 한 작가의 대표작인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의 실제 인물이다.
문 열사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상업고등학교(현재 광주 동성고) 1학년으로, 시민수습대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옛 전남도청에서 사상자들을 돌보고 유족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
그의 어머니 김길자 씨는 아들을 데려가기 위해 찾아왔으나 오히려 문 열사는 어머니를 안심시키며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5월 26일 계엄군이 광주로 재진입한다는 소식에도 끝까지 도청에 남아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으며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총격에 사망했다.
AI로 복원된 문 열사는 "저는 이제 이 소설을 읽는 모든 독자들의 마음 속에 있다. 소년 동호는 책을 펼칠 때마다, 거기가 어디든 어느 시간이든 꼭 온다. 그럴 기회를 준 한강 작가에게 무척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며 "저는 항상 여러분 곁에 있다. 오월 광주의 기억과 함께 소년 동호는 꼭 돌아온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 고 문건양 씨는 2014년에 책이 출판되자 수십권을 구매해 주변 사람들에게 나눠줬고, 어머니 김길자 씨는 한강 작가의 수상 소식에 문건양 씨가 생전 아들을 기리며 흘린 눈물 자국이 남아 있는 '소년이 온다'를 광주시에 기증했다.
한강 작가는 지난 7일 스웨덴 스톡홀름 한림원에서 열린 강연에서 손글씨로 고립된 광주의 참상을 알린 박용준 열사를 언급하기도 했다.
한강 작가는 이십대 중반에 일기장을 바꿀 때마다 맨 앞페이지에 '현재는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문장들을 적었다고 했다.
작가는 "이 소설을 쓰는 일을 더이상 진척할 수 없겠다고 거의 체념했을 때 한 젊은 야학 교사의 일기를 읽었다. 도청 옆 YWCA에 남아 있다 살해됐던, 수줍은 성격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박용준은 마지막 밤에 이렇게 썼다"며 그의 일기를 소개했다.
박 열사가 계엄군에 사망하기 전 작성한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란 일기 내용이다. 이 일기는 그의 유서가 됐다.
작가는 "그 문장들을 읽은 순간, 이 소설이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벼락처럼 알게 됐다. 두 개의 질문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로 거꾸로 뒤집어야 한다는 것도 깨닫게 됐다"고 했다.
고아로 자란 박용준 열사는 구두닦이, 신문배달을 시작으로 안해본 일이 없었고 1973년부턴 광주 YWCA 신용협동조합에 입사했다.
들불야학에 매진했던 그는 1980년 5월 군인들에 의해 철저히 봉쇄된 광주에서 '투사회보' 필경을 전담했다. 삼엄한 언론 통제 속에 배포된 투사회보는 당시 상황, 집회 일시, 시민 행동강령 등의 내용이 게재됐다.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된 광주시민들이 계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소식지였다.
들불야학팀은 하루에 8000여장의 투사회보를 등사기로 찍어냈고, 광주 전역을 돌며 유인물을 배포했다. 박 열사는 같은 내용을 20~30번 이상 철필로 꾹꾹 눌러 쓴 등사로 광주의 참상을 알렸다.
박 열사는 5월 27일 끝까지 YWCA에 머무르다 계엄군 공수여단이 발포한 총에 맞아 숨졌다. 그의 나이는 스물다섯이었다.
한강 작가는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 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 때, 광주는 더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 됐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이라고 광주의 오월을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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