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순이가 나라를 구한다" 응원봉 속 함성…5시 18분 되자 '묵념'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尹 체포·구속 촉구' 5차 총궐기대회
10~20대들, 좋아하는 연예인 노래 개사해 부르며 탄핵 요구

8일 오후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헌정유린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 구속촉구 제5차 광주시민 총궐기대회’에서 참가한 시민들이 직접 만든 응원봉과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12.8./뉴스1 ⓒ News1 김태성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우리가 살기 좋은 나라 만들어줄게, 너희 평생 노래하게 해줄게. '빠순이(연예인에게 환호하는 소녀팬을 지칭하는 용어)'가 나라를 구한다!"

광주 시민단체 연합으로 구성된 '윤석열 정권 퇴진 광주비상행동'이 5차 총궐기대회를 연 8일 5·18민주광장.

비상계엄으로 국가를 혼란에 파뜨린 "윤석열 대통령을 체포"하고, 그의 탄핵 투표를 성사시키지 않은 "국민의힘을 해체하라"고 외치는 시민들 사이사이 형형색색 빛나는 불빛이 보였다.

불빛의 주인공은 전부 10대·20대 젊은 층들. 콘서트장에서 아이돌 가수를 응원할 때 사용하는 '응원봉'을 들고 있었다.

이미 온라인상에서 화려한 발광력으로 이름을 알린 보이그룹 NCT의 '믐뭔봄'부터 제로베이스원의 '로즈링' 등 종류도 다양했다.

밴드 루시부터 보이그룹 위너·라이즈·몬스타엑스, 걸그룹 트리플에스까지 오른쪽 가슴엔 좋아하는 가수의 이름표도 달았다.

평소 집회의 중심이 되던 민주노총 등 시민단체는 오히려 민주광장 양 사이드에서 깃발을 들었다.

어른들은 서서 이들을 조용히 응원했고, 젊은 아이돌 팬들이 각자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개사해서 부르며 소망을 전했다.

보이그룹 라이즈 팬이라는 윤지원 양(19·여)은 "빠순이가 나라를 구하고 있다. '빠순이'라는 용어가 부끄럽지 않다. 빠순이가 세상을 변화시킨다"며 "내 가수가 평생 좋아하는 무대에서 원하는 노래를 마음껏 부를 수 있도록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이곳에 나왔다"고 말했다.

보이그룹 제로베이스원 멤버 성한빈의 팬이라는 조예슬 씨(21·여)는 그룹의 노래 가사 '다 네게 줄게'를 '탄핵해 줄게'로 개사해서 불렀다.

그는 "X(트위터)에서 광주 집회에 '빠순이들이 다같이 나가자'는 글을 보고 나왔다"면서 "처음에는 촛불 들고 모이는 집회에서 하나둘 응원봉이 늘어났다. 촛불보다 응원봉이 더 밝고 강력하지 않냐. 우리 젊은이들의 열망도 강력하다. 탄핵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좋아하는 연예인은 없지만 이 곳에 왔다는 김도윤 군(17)은 응원봉 대신 비눗방울을 들고 왔다.

그는 "같이 온 친구들 중 동생 장난감 요술봉을 들고 온 애도 있고, 심지어는 1㎏ 짜리 아령을 들고 온 애도 있다"면서 "10대들이 정치에 관심 없는 건 옛날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김 군은 "가만히 집에만 누워있기에 부끄러워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온 것"이라며 "국가와 국민을 우습게 아는 대통령과 정당은 꼭 역사의 심판을 받게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국언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대표는 "응원봉과 개사한 노래까지 너무 잘 만들었다. 아름답다"며 "젊은이들이 자랑스럽다. 여러분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음악을 마음대로 들을 수 있고 편안하게 일상을 나눌 수 있도록 끝까지 싸우겠다. 용기를 준 10대와 20대에게 존경과 감사를 전한다"고 말했다.

8일 오후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헌정유린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 구속촉구 제5차 광주시민 총궐기대회’에서 참가한 시민들이 5시 18분 시계탑에서 울리는 임을 위한 행진곡 음악에 맞춰 묵념을 하고 있다. 2024.12.8./뉴스1 ⓒ News1 김태성 기자

잠시 뒤 오후 5시 18분이 되자 민주광장은 한순간 조용해졌다. 노랫소리와 응원소리는 침묵으로 바뀌었고 밝게 빛나던 응원봉도 잠깐동안 불을 껐다.

바로 금남로 시계탑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는 시간이 됐기 때문. 5·18민주화운동 당시 마지막 항전지였던 옛 전남도청 앞에 위치한 시계탑에서는 매일 오후 5시 18분 임을 위한 행진곡의 멜로디가 울린다.

시민들은 모두 옛 도청 방향을 보며 고개를 숙였고 바람에 깃발 나부끼는 소리와 새 우는 소리,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 만이 광장을 채웠다.

이날 총궐기대회 사회자인 지정남 씨는 "이 민주광장 시계탑에서 울려 퍼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들으시면서 수 많은 다짐을 하셨을 것"이라며 "14일 탄핵안 재표결이 있다. 그때 이 시간에도 함께 나와주실 것이냐"고 물었다. 시민들은 이에 "네!"하고 크게 화답했다.

한편 주최측인 윤석열 정권 퇴진 광주비상행동 추산에 따르면 이날 제5차 총궐기대회에는 1500명의 광주시민이 함께했다.

주최측은 이날을 시작으로 매일 오후 5시 18분 시계탑 앞에서 '윤석열 체포와 구속'을 촉구하는 묵념을 진행할 예정이다.

breat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