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장 하루 장사 3만원 버는데…물류센터 알바 가면 13만원
[위기의 전통시장] 상인 100명이 말하는 현주소는 '암울'
광주 대형 쇼핑몰 속속 들어설 예정…생존과 소멸 갈림길
- 최성국 기자, 이수민 기자, 이승현 기자, 박지현 기자
"쌓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쉬운 것, 그게 전통이죠."
(광주=뉴스1) 최성국 이수민 이승현 박지현 기자 = 매일 새벽 5시, 박미순 씨(55·여)의 일상은 방앗간의 불을 켜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는 20년 전 1913송정역시장에 있던 방앗간을 시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았다. 시아버지는 1973년 가게를 열었으니 50년 명맥을 이은 셈이다.
방앗간 옆엔 박 씨 친동생이 운영하는 국숫집이 있다. 박 씨는 "전통시장의 매력을, 전통시장의 깊은 사람 냄새를 느껴보라"며 동생을 시장으로 불렀다.
박 씨는 매일 밤 9시가 돼서야 불을 끈다. "장사는 노력하고 버텨야 하는 것"이라던 시아버지의 신념을 잇고 있다.
시아버지 때부터 이어진 노력에 방앗간은 중소벤처기업부 지정 '백년가게'가 됐다. 백년가게는 30년 이상 명맥을 유지하면서 오래도록 고객의 꾸준한 사랑을 받은 점포 가운데 우수성과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받은 점포에 주는 공식 인증이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물건은 소포장으로 규격화했고 온라인 택배 주문을 도입했다. 잠깐이지만 온라인 스마트 스토어도 입점했다.
하지만 이곳의 산증인이나 다름없는 그가 내다보는 전통시장의 미래는 암울하다. 그는 "전통시장은 사라진다. 어쩔 수 없는 시대의 변화"라고 말했다.
박 씨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송정시장의 상황은 매우 좋지 않다. 타지에서 온 관광객도 초입에서 둘러보다가 '별것 없다'며 돌아간다. 새 아파트의 부엌은 줄어들고 핵가족화로 가족의 숫자도 많지 않으니, 전통시장을 찾을 이유가 있나"라고 반문했다.
박 씨가 전통시장의 강점으로 말했던 '사람 냄새'. 그것이 없는 게 더 편한 세상이 돼 가고 있다는 의미로 읽혔다.
밤에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에 물품을 담으면 다음 날 아침 현관 앞에 택배가 도착하는 '일일 배송' 시대, 터치 몇 번이면 몇 분 만에 음식이 배달되는 세상이다. 치솟는 물가는 저렴한 가격은 원산지와 신선도를 후순위로 밀어냈다.
광주 남광주시장. 이곳에서 40년째 건어물 장사를 하는 A 씨(66·여)는 시장이 쉬는 날 물류센터로 아르바이트하러 간다.
물류센터 하루 일당은 13만 원인 반면 그가 시장 가게에서 하루에 버는 돈은 3만 원 남짓이다.
A 씨는 "지난 여름엔 전기세만 69만 원이 나왔다. 너무 버티기 힘들어 아르바이트를 나갔다"며 "전통시장이 가치를 잃으니 적자는 누적되고 알바를 뛰니 더 버는 상황에 헛웃음만 난다"고 했다.
최근 동구 계림동 홈플러스가 문을 닫았다. A 씨는 "홈플러스조차 장사가 안돼 문을 닫는 마당에 전통시장은 오죽하겠느냐"고 허탈해했다.
10일 기준 등록·인정된 광주의 전통시장은 24곳, 전통시장 내 점포는 총 2798개다. 동구 508명, 서구 1002명, 남구 119명, 북구 924명, 광산구 148명 등 2701명이 박 씨와 A 씨처럼 전통시장에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뉴스1>은 10월 한 달간 동구 대인시장·남광주시장. 서구 양동시장, 북구 말바우시장, 광산구 1913송정역시장에서 총 100명의 전통시장 상인을 심층 인터뷰하며 동일한 질문을 했다.
'광주의 전통시장이 잘 운영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엔 '잘 운영되지 않고 있다'는 답변이 80%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반면 74명은 '전통시장이 50년 후엔 없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2027년말부터는 롯데아울렛 광주 수완점 복합쇼핑몰, 전방·일신방직 부지 '더현대 광주', 광주신세계 프리미엄 백화점을 포함한 광천터미널 복합화 사업, 어등산 관광단지에 그랜드 스타필드 광주 등 4개의 대형 복합쇼핑몰이 잇따라 개점한다.
대형 복합쇼핑몰의 등장이 전통시장의 소멸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우려하는 시장상인들의 목소리가 컸다.
다른 한편으로는 대형 복합쇼핑몰이 '상생'을 통해 망해가는 전통시장을 되살릴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기대감도 내비쳤다.
위기와 기대감의 공존. 2024년 초겨울의 광주 전통시장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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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광주지역 전통시장의 위기가 높아지고 있다. 일일배송과 상인 고령화 등 이유는 셀 수 없이 다양하다. 3년 뒤부터는 대규모 복합쇼핑몰이 줄줄이 들어선다. 총 4곳의 복합쇼핑몰과의 생존 경쟁을 대비하기 위해 주어진 시간은 3년인 셈이다. 뉴스1은 전통시장 상인 100명과의 심층 인터뷰를 통해 광주와 전통시장에 주어진 '모래시계'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 7회에 걸쳐 진단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