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학생독립운동은 3·1운동 이후 제2차 독립운동"

전남대 김재기 교수, 하와이 교민들 독립운동활동 기록 발견

1930년 3월 하와이에서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지지하는 내용이 담긴 하와이한인협회 공보.(김재기 교수 제공)2024.10.31./뉴스1

(광주=뉴스1) 서충섭 기자 = 3·1운동 이후 최대 규모이자 일제강점기 최후의 전국적 항일운동으로 평가되는 광주학생독립운동 당시 이역만리 하와이 동포들도 이를 지지했던 흔적이 발굴됐다.

이승만 등이 주도한 기존 하와이 독립운동이 침체 시기에 놓일 당시 교민들은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통합을 시도한 것으로 분석됐다.

31일 광주학생독립운동 해외 확산 연구를 진행하는 김재기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지난해 하와이 현지조사에서 관련 신문 보도와 공보문이 발견됐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발행된 대한인국민회 기관지 '신한민보' 1930년 3월 13일자 보도와 하와이한인협회 공보 5호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던 한인 250여명이 하와이 한인회를 결성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신한민보 보도는 1930년 1월 13일 하와이 오아후에 광주학생독립운동이 알려지자 한인 29명이 학생독립운동을 지지하고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단결하자는 취지의 발기인 회의를 진행했다. 이후 회원이 80여명으로 늘었다.

발기 취지문은 광주학생독립운동은 1919년 3·1운동 이후 제2차 독립운동으로 평가한다.

이를 통해 결성된 하와이한인협회는 민족주의를 지향하고 임시정부와의 연대를 통한 대한독립운동을 강조했다.

김재기 교수팀은 당시 보도된 기사 속 회원 명단을 분석, 26명에 대해서는 건국훈장 등 서훈이 이뤄졌으나 20여명은 아직 서훈이 추서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했다.

함께 발견된 하와이한인협회 공보는 1930년 3월 150여명이 광주학생독립운동으로 결성된 하와이한인협회 활동을 지지하고자 한인자치회를 결성했다는 기록도 담겼다.

자치회는 대일항전을 위한 혁명군 양성에 뜻을 두고 회장 이홍기, 부회장 김상호, 서기 한태경, 재무 정호영, 총무 조치삼을 선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김 교수는 "당시 하와이 한인사회는 이승만 등 기존 독립운동단체가 사분오열하면서 침체되던 시기다. 이때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계기로 여러 단체가 통합되고 활발한 활동을 하게 됐다는 의미가 크다"며 "최소 500명 이상의 한인이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지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zorba85@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