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해봤자 검불만" 벼멸구 폭탄에 농심도 시커멓게 탄다
[르포] 전남 장흥 들녘, 고사된 벼만 듬성듬성
축산농가 사료 확보 비상…농민들 농업재해 인정 요구
- 박영래 기자
(장흥=뉴스1) 박영래 기자 = "말라비틀어진 쭉정이만 남았다. 수확을 배봤자 검불만 나온다."
5일 오후 찾은 전남 장흥군 대덕읍 연지리 들녘.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시기지만 듬성듬성 폭탄 맞은 듯 허옇게 말라비틀어진 벼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벼멸구가 휩쓸고 간 들녘은 처참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벼멸구 피해를 입은 벼는 영양분 공급이 끊기면서 중간부분이 모두 꺾인 채 쓰러져 있다.
900평 규모의 한 단지 가운데 80%가량이 벼멸구 피해를 입은 논도 보인다. 이미 벼를 벤 곳도 곳곳에 눈에 들어온다. 면사무소의 벼멸구 피해조사가 끝나 확산을 막기 위해 조기수확에 들어간 곳이다.
벼멸구 피해를 입어 서둘러 벼베기를 마친 뒤 논을 불태우고 있던 이종선씨(51)는 "700평 전체가 벼멸구 피해를 입었다"면서 "지난해는 톤백 포대로 2개 정도 수확했는데 올해는 톤백 용기 1개의 절반 정도도 채우지 못했다"고 침통해했다.
친환경농법으로 재배하는 지역의 경우 벼멸구 피해가 더 심한 것으로 조사됐다.
인근 회진면 지역 역시 드넓은 간척지 곳곳에서 벼멸구 피해를 입은 흔적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정상적으로 자란 벼는 노랗게 알곡이 익어가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지만 벼멸구 피해 벼는 볏대가 희멀겋게 변해있다.
9월 중순 벼멸구가 대규모로 발생해 연약해진 벼가 연이은 집중호우로 주저앉으면서 콤바인을 이용한 벼베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들녘에서 만난 농민 안경숙 씨(67‧여)는 "벼멸구 피해를 입은 벼는 수확하기도 힘들지만 수확해봤자 알곡이 제대로 들어차 있지 않고 대부분 검불뿐이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평년의 경우 농약을 세 번 정도 치는데 올해는 벼멸구 때문에 한번 더 쳤는데도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올해처럼 벼멸구 피해가 심했던 적은 없었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전남은 벼 재배면적 14만7715㏊ 가운데 13.3%인 1만9603㏊가 벼멸구 피해를 입었다. 고흥과 보성, 해남, 장흥서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장흥지역의 경우 벼멸구 피해면적은 전체 벼 재배면적(7539㏊)의 23.6%인 1776㏊에 이른다.
벼멸구 피해가 확산하면서 축산농가에도 파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9월 말 기준 장흥군의 한우 사육두수는 5만8000여 마리. 수확이 끝난 볏짚을 곤포사일리지로 만들어 사료로 사용해야 하지만 벼멸구 피해벼의 경우 사실상 볏짚의 효능이 떨어지고, 벼멸구 방제를 위해 농약이 과도하게 사용되면서 사료용으로 사용할 수가 없다.
김광조 대덕읍 연지리 이장은 "벼멸구 피해를 입은 벼는 맛이 없어서 소도 먹지를 않는다"고 말했다.
농민들은 벼멸구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상황이다.
중국 남동부지역에서 발생한 벼멸구는 지난 7월 남부해안지방을 통과하는 저기압에 따른 기류와 제9호 태풍 종다리 발생 시 다량이 국내에 유입된 것으로 분석됐다.
이 때문에 전남도 역시 네 차례에 걸쳐 벼멸구 피해를 농업재해로 인정해 줄 것으로 농림축산식품부에 건의했다.
김영석 전남도 식량원예과장은 "농업재해로 인정하는 부분에 대해 농림부가 기재부, 행안부와 적극 논의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yr2003@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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