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강제 동원 피해자 김성주 할머니 별세…향년 95세

초등학교 졸업 후 미쓰비시중공업 동원돼 갖은 고초 겪어

지난해 4월1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2018 대법원 강제동원 소송 대리인단·지원단체 주최로 열린 대법원 특별현금화명령 재항고심 사건 신속 판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 김성주 할머니가 손펫말을 들고 있다. 2023.4.19/뉴스1 ⓒ News1 박지혜 기자

(광주=뉴스1) 전원 기자 = 일제강점기 10대 어린 나이에 미쓰비시중공업으로 강제 동원됐던 김성주 할머니가 별세했다.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 시민모임은 6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1차 소송 원고 김성주 할머니가 전날 영면에 들었다고 밝혔다. 향년 95세.

김 할머니는 전남 순천이 고향으로 순천남초등학교를 졸업한 1944년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공부해서 중학교도 갈수 있다"는 일본인 담임 선생님의 권유와 강압에 의해 일본 길에 나섰다. 당시 만14살이었다.

도착한 곳은 비행기를 만드는 미쓰비시중공업 나고야항공기제작소 공장이었다.

굶주림 속에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고된 노동을 강요받았다. 철판을 자르는 선반 일을 하다 왼쪽 검지 손가락이 잘리는 부상을 입었다. 도난카이 지진에는 목숨은 건졌지만 무너지는 건물더미에 의해 발목에 큰 부상을 입었다.

해방 후 고향에 돌아왔지만 일본에 다녀왔다는 이유 하나로 남편으로부터 온갖 인신모욕과 구박을 받으며 평온한 생활을 가져 보지 못했다.

뒤늦게 용기를 내 양금덕 할머니 등과 함께 일본 소송에 나섰지만 2008년 일본 최고재판소에서 끝내 기각 패소했다. 이후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의 도움을 받아 2012년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광주지법에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6년여 만에 2018년 11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했다.

미쓰비시 측이 배상 이행을 거부하자 원고 측은 미쓰비시중공업 자산에 대한 강제집행을 단행했고, 김 할머니도 특허권 2건을 압류했다. 정부의 강제동원 제3자 변제 방안을 발표했고 이에 반대하던 김 할머니는 여러 이유로 기존 입장을 바꿨다.

유족으로는 2남 2녀가 있으며, 빈소는 안양장례식장에 마련됐다. 발인은 7일 오후 1시다.

한편 도야마에 위치한 후지코시 공장으로 동원된 김성주 할머니 동생 김정주 할머니는 후지코시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한 뒤 후지코시 측의 배상 이행을 기다리고 있다.

junwon@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