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멸구에 폭염까지, 농사 폭삭 망했어요" 강진 청년 농부 한숨
일주일 전부터 벼멸구 피해 확산…방제약 물에 쓸려
"태풍 없더라니 뒤늦게 폭우…썩어가는 벼 보면서 한숨만"
- 최성국 기자
"벼멸구부터 폭우까지… 지금 물도 안 빠져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어요."
(광주=뉴스1) 최성국 기자 = 전남 강진군에서 벼농사를 짓는 청년 농부 송 모 씨(35)는 22일 수화기 너머로 한숨만 내쉬었다.
해당 농가에는 2주일 전부터 급작스럽게 벼멸구가 창궐하기 시작했다. 수확할 때가 다가오면서 쌀알이 누레져야 하지만 볏대부터 갈색이나 검은 색으로 거무죽죽하게 변했다.
벼멸구는 벼를 먹이로 삼는 해충으로 벼 포기 아래 서식하다가 볏대의 즙액을 빨아 먹는다.
벼멸구는 확산이 빨라 발견된 시점에서는 방제를 해도 제어하기가 힘들다. 송 씨도 벼멸구 피해를 확인하자마자 논에 방제약을 뿌리면서 피해를 줄이려 안간힘을 썼지만 19일부터 전날까지 폭우가 내리면서 일주일간의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됐다.
송 씨는 "벼멸구가 볏대를 먹으면서 멀쩡한 벼들도 도미노처럼 다 넘어졌다"며 "무지막지하게 내린 비에 약은 다 쓸려가고 넘어진 벼들은 모두 물에 잠겼다"고 허탈해했다.
강진군에는 19일 오전부터 21일 밤까지 313.9㎜의 비가 쏟아졌다. 전날 시간당 최다 강수량은 96.5㎜에 달했다.
강진에는 이날 오후에도 빗줄기가 내렸다.
송 씨는 늦은 시각인 지금이라도 논에 들어가려 했으나 주변의 만류에 모든 손을 놓았다.
송 씨는 "논이 진흙탕과 다름 없어 장화를 신어도 들어가지를 못하고 벼를 묶는 작업 자체를 아예 할 수 없다"며 "비가 그쳐야지 물을 빨리 빼고, 땅이 말라야 벼를 세울 텐데 물 빠지는 것에만 2~3일은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인근의 웬만한 마을은 벼멸구 피해와 폭우 피해를 보았을 것"이라며 "다들 올해 농사는 텄다며 자포자기한 심정"이라고 전했다.
송 씨는 올해 농사에 대한 기대감이 하루아침에 사라진 심정이다. 그는 "농부들에게 가장 무서운 게 9월에 부는 태풍"이라고 했다. 6~8월에는 태풍이 불어도 벼 이삭이 들지 않아 넘어지지 않지만 볏대가 딱딱해지고 쌀알로 머리가 무거워지는 9월에는 조금의 비바람에도 벼를 잃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송 씨는 "올해 9월에 태풍이 안 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하루아침에 폭우를 쏟아낸 하늘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전남도 농업기술원에 따르면 현재 전남지역 전체 벼 재배면적인 14만 7715㏊ 가운데 1만 7766㏊에서 벼멸구 손해를 입었다.
이번 극한호우로 발생한 전남지역의 벼 도복 피해는 보성 716㏊, 해남 95㏊, 영암 80㏊, 나주 78.3㏊, 순천 30㏊ 등 총 1030.3㏊ 상당으로 잠정 집계됐다.
전남도는 피해 최소화를 위해 긴급방제 예비비 16억 원을 추가 지원, 농협 등 지역 공동방제사업단과 협력해 벼멸구 방제가 필요한 면적 1만 9000㏊에 신속 방제작업을 추진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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