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투자·명의도용·성매매 강요'…내팽개쳐진 '보호종료 장애인'

[장애인 홀로서기①] 권익옹호기관을 찾는 아이들
지난해만 87건 학대의심 신고…22건이 경제적 학대

편집자주 ...보육원에서 자란 장애 아동들은 18세에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인생의 첫 발을 내딛는 이들에게 범죄의 위험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자립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의 실태와 원인을 살펴보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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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스1) 김태성 이수민 기자 = # 지적장애인 A 군은 자립 후 신원불상인에게 달콤한 투자 유혹을 받았다. 명의만 빌려주면 부자로 만들어주겠다는 것. 얼마 뒤 A 군은 자신이 부동산 갭투자에 연루돼 4채의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수사가 시작되자 A 군은 졸지에 전세 피해자들에게 보증금 수억 원을 물어줄 위기에 처했다.

# '너 돈 많잖아. 나 좀 도와줘' 지적장애인 B 양은 시설에서 먼저 나간 선배로부터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수백만 원을 빌려준 뒤 부탁은 점점 강요가 됐다. 휴대전화와 렌탈 제품을 개통해달라는 요구에 응하지 않자, 성매매를 억지로 시키고 나중엔 폭행도 일삼았다.

보육원 출신 장애인들은 비장애인 보호 종료 아동들과 마찬가지로 만 18세에서 24세 사이 퇴소해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

신체·지적 장애라는 불리한 요건과 생애 처음 경험하는 독립이라는 과제 앞에서 이들은 비장애인보다 쉽게 각종 범죄에 휘말리게 된다.

1000만 원의 자립지원금을 가지고 있다 보니 잘못된 투자에 엮이는 경우도 잦고 주변에서 조언해 줄 사람이 없다 보니 피해도 금방 알아채지 못한다.

살펴봐 줄 '부모'는 없고 다시 '시설'로 돌아갈 수도 없다. 경찰을 찾아 신고할 용기는 더욱 없다. 결국 학대 피해 장애인들은 권익옹호기관의 문을 두드리게 된다.

광주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따르면 지난 한 해 기관에 신고된 장애인 학대의심 사례는 총 87건에 이른다.

기관은 학대피해 장애인 당사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2017년 10월에 설립됐으며 장애인복지법에 의해 범죄 피해 내용을 조사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장애인복지법에 의한 역할 외에도 광주시 장애인 차별 금지와 권리 구제에 관한 조례에 의해서 인권침해나 차별을 당한 장애인들을 상담하고 지원하는 일도 맡는다.

광주장애인권익옹호기관 설립 후 8년간 총 신고건수는 913건에 달한다.

과거에는 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폭행 등 신체적 착취가 많았던 반면 최근 들어서는 보호종료 아동과 자립준비청년을 대상으로 한 경제적인 착취 사례가 늘어났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장애 당사자와 접촉해 돈을 보내라고 협박을 하는가 하면 명의를 도용해 휴대전화나 렌탈 제품, 주택 등을 계약하는 사례도 많아졌다.

특히 보육원에서 먼저 퇴소한 비장애인 선배들에 의한 피해가 많았다. 악의적인 경우 일부러 장애인 기관에 봉사자로 취업해 그 안에서 피해 대상자를 물색한 뒤 친분을 쌓고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학대의심 사례 총 87건 중 장애인 학대로 인정된 사례는 60건이다.

나머지 27건의 경우 단순 권리침해이거나 범죄행위 성립이 어려운 경우, 당사자가 신고를 원하지 않은 경우다.

인정 사례 60건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신체적 학대 17건 △정서적 학대 8건 △성적 학대 12건 △유기 방임 1건 등이고 '경제적 학대'가 2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것마저도 기관에 신고된 수치일 뿐 실제 경찰로 먼저 신고되는 사건까지 포함한다면 광주에서만 1년에 장애인 착취 범죄가 150~180건 정도 발생한다고 가늠할 수 있다.

이처럼 장애인들이 학대 범죄에 쉽게 노출되는 이유 중 하나는 '후속 관리'가 소홀하기 때문이다.

자립준비기관이 퇴소 후 5년간 보호종료 아동을 모니터링하지만 전담인력이 적어 제대로 된 관리가 어려울뿐더러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도 대처 방법을 잘 알지 못해 손놓고 있기 때문이다.

준비기관은 말 그대로 '준비'를 돕는 것이 주 역할이기 때문에 자립 전 집 계약, 취업기관 연계, 자취 도움까지는 관리가 되지만 이후에는 월 1회 전화 점검하는 것이 전부다. 아이들에게 빚이 생겼다거나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긴 어렵다.

박찬동 광주장애인권익옹호기관 관장은 "장애인 보호종료 아동들의 경우 독립 후 처음 겪게 되는 외로움과 인간관계를 맺어본 경험이 적어 타인에게 의지하기 때문에 범죄에 쉽게 노출되고 장기적으로 피해를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제적 피해의 경우 20대 초반에 신용불량자가 되는 등 회복이 아예 불가능하게끔 망가져 버리는 경우가 있어 더 우려된다"면서 "자립 전 경제교육, 자립 후 대면 관리 등 구체적인 지원 방안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 장애인에게 신체적·정신적·정서적·언어적·성적 폭력이나 가혹행위, 경제적 착취, 유기 또는 방임을 하면 학대 행위에 따라 장애인복지법, 형법, 성폭력처벌법, 아동학대처벌법 등 다양한 법률에 의해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장애인 학대가 의심되면 1644-8295에 신고하시길 바랍니다.

breath@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