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서해랑길을 가다…⑦다도해 절경이 부르는 '헬로 진도'길(12코스)
"수평선에 점점이 박힌 섬들이 등대 형상의 '바람이 머무는 곳' 포토 존으로 들어와 한 장의 사진이 된다"
- 조영석 기자
(진도=뉴스1) 조영석 기자 = 진도 서해랑길 12코스는 진도읍 산월리에 소재한 쉬미항에서 서부해안로를 따라 녹진국민관광단지로 향한다. 울돌목 건너 진도대교 아래 자리한 녹진국민관광단지는 진도 서해랑길의 출발점이자 종점이다. 섬 길의 특성상 진도를 한 바퀴 돌아 마침내 원점회귀하는 마지막 구간이다.
쉬미항은 수 백 년 동안 육지로 오가는 진도의 제일관문이었지만 1984년 들어선 진도대교에 밀려 몰락한 양반가처럼 쇠락했다. 대신 포구 앞 기암괴석의 보석 같은 섬들이 관광자원으로 떠오르면서 관광포구로 명찰을 바꿔달고 있다.
◇진도의 제일관문이었던 쉬미항, 근데 ‘쉬미’는...
'작두도-사자섬(광대도)-구멍도(혈도)-손가락섬(주지도)-발가락섬(양덕도)-방구도' 등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유혹인 이들 섬들을 하루 4차례 유람선이 오간다. 남녘 땅 미지의 여행지가 쉬미항에서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길을 걷다 보면 때로는 홀로 쓰잘데없는 생각에 골몰해지는 경우가 있다. 항구의 이름인 '쉬미'가 그랬다. '수미(水尾)'에서 나왔다는 말도 있으나 한자의 의미가 지형과 다르고, 출처마저 정확치 않다. '수미'라는 쉬운 발음을 놔두고 굳이 '쉬미'로 가는 어려움을 택했을까 하는 의문만 몽실몽실 피어올라 눈과 발이 따로 간다. 혹시 몸과 마음이 쉬어가는 곳이라며 '쉼(休)'이 '쉬미'로 변한 것은 아닐까.
◇바람도 머무는 '수유리 명품공원'
쉬미항에서 수유리로 가는 해안로를 따라 20여분쯤 오르면 '수유리 명품공원'이라 이름 지은 쉼터를 만난다. 노란 금계국과 키 작은 코스모스가 피어 한창인 공원 너머로 진도군과 신안군 해역의 다도해 절경이 산맥처럼 펼쳐진다. 하태도·상태도·장산도·희어도 등 수평선에 점점이 박힌 섬들이 등대 형상의 '바람이 머무는 곳' 포토 존으로 들어와 한 장의 사진이 된다.
서해안로 산기슭 펜스에 '하이 파이브'하듯 선명하게 새겨진 'HEIIO JINDO' 알파벳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개매기체험장으로 유명한 청용어촌마을 입구에 닿는다.
마을로 들어서는 초입에 'FRONT CAFE'라는 상호의 커피숍 하나가 이정표처럼 놓이고, 카페 앞으로 깊숙이 들어온 바다가 만(灣)을 만들어 갯벌을 토해놓고 있다.
◇개매기체험장으로 유명한 청용어촌마을
서해랑길은 청용어촌마을로 들어서지 않고 카페에서 마을 뒷산 임도로 직진한다. 가는 길에 이정표를 살피지 못해 발자국을 찍었던 청용어촌마을의 풍경은 지나간 인연이 되고, 마을 앞 건너편 바다에서는 눈에 익은 발가락섬과 손가락섬이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
임도는 조그만 야산으로 이어지다 산언덕을 넘어 전두1리 정류장을 지나 산꽃미술관 방향으로 향한다. 산꽃미술관을 지나면 간척사업으로 조성한 논밭이 지평선으로 이어지고, 모내기를 마친 논의 사름위로 백로의 먹이 사냥이 떼 지어 유유하다.
우렁이 농법으로 벼농사를 하는 진도의 농가에서는 올해 모내기를 두 번 씩 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후변화로 따뜻한 겨울철이 계속되면서 죽지 않는 우렁이가 모내기철의 어린 모들을 식량으로 삼은 탓이다. 백로들이 유유할 만하다.
◇10리길의 나리방조제
길은 군내천 둑방길을 따라 걷다 수유방조제와 백조호수공원을 지나 나리방조제로 접어든다. 군내면 나리에서 진도읍 전두리를 잇는 나리방조제는 길이가 3.5㎞로 10리길에 가깝다.
방조제 둑길이 서해랑길을 겸하고, 둑길 아래로 서부해안로가 함께 간다. 둑길에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바다처럼 펼쳐지는 군내호 너머로 진도타워와 진도대교가 아스라이 모습을 드러낸다. 닿아야 할 종점이다.
둑길 왼쪽의 진도 서북부 해역에서는 바다와 하늘이 맞닿아 한 색으로 푸른데 가로 놓인 검은 섬들이 선처럼 늘어서 하늘과 바다를 구분한다.
나리방조제가 끝나는 곳에서 길은 가늠목마을 입구를 지나 신기마을 거쳐 건배산 범바위로 오른다. 종점인 우수영국민관광지까지 9.8㎞를 남겨두고 있다. 쉬미항에서 출발한 지 4시간쯤 지났다.
◇다시 울돌목에서…
나리방조제 둑길을 빠져나온 발길은 서부해안로를 따라 힘겹게 오르다 '서해랑길 12코스 입구- 범바위 둘레길'이라는 표지판을 만나 건배산 숲길로 들어선다.
줄곧 콘크리트 포장도로에 시달려 온 발길이 숲길에서 신음을 거두지만 발길은 자신의 발자국을 의심하며 간다. 고갯길의 이정표는 나리마을 가는 길과 함께 '범바위 둘레길'이 좌우 쌍방향을 가리키고, 정작 가야 할 범바위는 흔적조차 없다.
고민 끝에 나리마을 방향을 택했으나 결국 길을 잃고 나리정류장으로 내려선 발길은 해안로를 따라 죽전마을로 향한다. 내비게이션에 '녹진국민관광단지'를 입력하고 3시간쯤 걷다보면 죽전마을과 군내북초등학교를 지나 '이충무공 승전공원'에 마침내 닿는다.
울돌목 진도 해안가를 따라 조성된 승전공원에는 아찔한 높이의 스카이워크 위로 이순신 장군의 동상이 세상의 우듬지로 솟아 명량대첩의 현장을 내려 보고 있다. 울돌목은 오늘도 여전히 427년 전의 그날처럼 거친 호흡으로 소용돌이 치고 있다.
여행 팁 서해랑길 12코스는 진도읍 쉬미항- 청용마을- 전두마을- 백조호수공원- 나리방조제- 나리마을- 죽전마을- 이충무공승전공원- 우수영국민관광지까지의 22.5㎞ 구간이다. 진도 서행랑길 마지막 구간이자 가장 긴 구간이다. 갈림길에 이정표가 없는 경우가 많아 '길 잃음'이 일상처럼 되풀이 된다. 가는 길에 청용마을 입구의 카페를 제외하면 마땅한 휴게시설이 없다. 충분한 식수와 간식, 간단한 구급약품은 필수다. 여름철이라면 따가운 햇볕에 대한 대책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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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날이 풀리고 산하엔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있습니다. 길 따라 강 따라 굽이굽이 얽힌 삶과 역사의 흔적을 헤아리며 걷기에 좋은 계절입니다. 이 '서해랑길'을 따라 대한민국 유일의 '민속문화예술 특구'인 진도구간을 걸으며 길에 새겨진 역사, 문화, 풍광, 음식, 마을의 전통 등을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신들메를 고쳐 매고 함께 떠나볼까요.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