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건물 무너지던 그날, 한 가족의 삶도 무너져 내렸다

[광주 학동참사 3주기]그날의 악몽 속에 갇힌 남은이들

편집자주 ...기본적인 안전 지침을 지키지 않은 날림공사로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광주 학동참사가 벌써 3주기를 맞는다. 1000일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유족들의 아픔, 트라우마는 이어지고 책임자 처벌은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6월 9일의 참사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획기사를 3편에 나눠 싣는다.

2021년 6월 9일 오후 4시22분쯤 광주 동구 학동 재개발지역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 1동이 무너져 도로를 달리던 시내버스와 승용차 2대를 덮친 가운데 119 구조대가 사고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벌이고 있다. 2021.6.9/뉴스1 DB

(광주=뉴스1) 이승현 기자 = 2021년 6월 9일 오후 4시 22분, 광주 동구 학동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무너지며 시내버스를 덮쳤다.

광주 동구 무등산국립공원(증심사)과 북구 전남공무원교육원을 오가는 운림54번 시내버스는 종점인 증심사를 다섯 정거장 남겨둔 상황이었다.

시내버스에 타 있던 시민 17명 중 8명이 다치고 9명이 숨지는 비극이 일어났다.

암 수술을 했던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면회를 가기 위해 해당 버스에 탄 황옥철 유가족 협의회 대표의 처제 A 씨는 그 길로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당시 꽃다운 나이 서른이었다.

함께 버스에 올랐던 처제의 아빠이자 황 대표의 장인어른 B 씨는 겨우 목숨만 건졌다. 하지만 으스러진 갈비뼈들이 폐를 찔러 두 번의 큰 수술과 함께 오랜 기간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철거 건물이 무너져 버스를 덮친 그날의 사고로 황 대표 가족의 삶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3년이 지난 지금, 사고 흔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감쪽같이 사라진 채 아파트가 들어설 준비를 하고 있지만 이들은 여전히 그날의 악몽 속에 살고 있다.

딸이 다섯인 딸 부잣집 막내로 태어나 애교 많고 살가운 강아지 같았던 A 씨를 잃은 고통에 어머니는 큰딸이 있는 경기도로 향한 뒤 광주를 찾지 않는다.

부상을 입었던 B 씨는 사고 후유증으로 자주 깜빡깜빡하는 등 정신적·육체적 고통이 지속되고 있다.

황 대표 부부가 사진을 내보이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온 가족이 떠났던 제주도 여행 이야기를 꺼내보지만, 자매들 사이에선 A 씨 이름이 언급되는 것은 금기가 됐다.

1000여 일의 시간이 한 가정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지만 책임자에 대한 결론은 아직도 매듭지어지지 못했다.

황 대표는 "그동안 수차례 진행된 사고책임자 재판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며 "가족과 유가족을 대표해 목소리를 내고 있는데, 제대로 된 판결이 나지 않으면 정신이 흐트러져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것 같아서"라면서 말끝을 흐렸다.

사고 3주기를 나흘 앞둔 그는 처제의 이름을 되뇌며 "부모님은 언니들과 내가 잘 돌볼 테니 그저 아무 걱정 없이 마음 편히 쉬어라"고 말했다.

pepper@news1.kr